[티타임] 잉꼬부부 보면 속이 뒤틀린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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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올해 결혼 17년째라는 주부 A씨는 남편 얘기만 나오면 '아직도' 얼굴이 환해진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점심식사를 하다 남편 얘기가 화제에 올랐다. A씨가 예의 환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우리 남편은 내 생일만 되면 꼭 우리 친정 부모님께 이벤트를 해드려요."

이벤트? 친정 부모님께? 요사이 심드렁한 우리 부부 사이에 더욱 악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의자를 바짝 당기고 귀를 기울였다.

"잘 태어나게 해주셨고, 소중하게 키워서 자기를 믿고 보내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나요. 이벤트는 상품권이나 꽃바구니 배달, 외식, 현금 등을 드리는 것인데 결혼 후 지금까지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전달하더라고요."

그러자 옆에 있던 B주부가 "A씨는 시댁에 더할 수 없이 잘해요. 아마도 남편이 그 고마움의 표현을 처가에 하시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렇다. 일방통행이라는 것은 없다. 항상 누군가 먼저 희생정신을 발휘하고 나면 그에 대한 보답이 생기는 것이 인지상정 아닐까?

뒤를 이어 C주부가 "우리 친정 언니는 결혼한 지 20년인데 형부가 장모님께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자주 편지를 쓰더라고요. 우리 엄마는 그게 제일 큰 선물이라며 흐뭇해 하시고 형부에게 늘 고맙다고 그러더라고요"라고 덧붙였다.

아-. 이런 방법들은 쉬운 듯하면서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내 마음부터 비워야 하고 시기.질투가 없이 상대방을 대하면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련만, 모든 것을 나의 잣대에 맞추니 나는 아직 남의 이야기에 이렇게 부러워만 하고 있구나.

"감동적인 이야기를 하나 더 할까요? 저희는 결혼기념일이면 양가 부모님을 모셔놓고 조촐하게 식사 대접을 해요. 이렇게 한 가정을 이루어 소중하게 여기며 탈없이 잘 살아가고 있음을 답례로 보여드리기 위해서지요."

이렇게 말하며 미소를 띠는 A주부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누구나 결혼할 때는 사랑한다고 말하고 서로 부모님께 머리숙여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부부 사이도 메말라 가고 시부모, 장인장모 역시 모르는 체하며 살게 되는 것이 아닌지. 이제부터라도 이렇게 한번 살아보리라 다짐해 본다. 내가 먼저 잘하는데 남편이 설마 모른 척하지야 않겠지.

정미원(주부통신원) <01932625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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