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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화요일] 삶 비추는 조명의 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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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기독교 성서에 따르면 신이 천지를 창조하고 가장 먼저 만든 게 바로 빛이다. 빛은 그렇게 생명의 첫 순간부터 인간을 지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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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제 인간이 빛을 지배하는 시대가 왔다.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그 주인공이다. 이 조명은 LED, 즉 전기를 흘려보내면 빛을 내는 반도체를 사용한다. 정보기술(IT)의 응축체인 반도체가 들어간 조명은 더 이상 예전의 조명이 아니다. 조명으로 할 수 있는 일, 조명이 쓰이는 곳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컨설팅업체인 맥킨지에 따르면 글로벌 LED 조명 시장 규모는 2011년 12조5000억원에서 약 5년 뒤인 2020년 89조원으로 빠르게 커질 전망이다. 해외 기업 중엔 필립스·제너럴일렉트릭(GE)·오스람·니치아 등이, 국내에선 LG이노텍·서울반도체·서울바이오시스 등이 시장을 공략 중이다.

 LED 조명은 반도체 물질을 조절해 각기 다른 파장의 빛을 낼 수 있다. 녹색·적색·청색·백색…. 말 그대로 ‘맞춤형 빛’을 요리할 수 있다. LED는 빛의 파장대별로 가시광선·자외선·적외선의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된다. 가시광선 LED는 일반 조명이나 스마트폰·TV의 광원으로, 살균 기능이 있는 자외선 LED는 공기청정기나 피부 치료기기, 정수기 등에 쓰인다. 적외선 LED는 미용기기나 적외선 동작인식센서 등에 요긴하다. 먼 미래가 아닌 오늘과 내일의 일상 속의 ‘신통방통한 조명’을 느껴보자.

 일요일 저녁부터 본격적으로 도지는 ‘월요병’. 개인별로 말 못할 이유가 있겠지만 월요병의 주된 원인은 주말 늦잠에서 비롯된 생체리듬의 불균형이다.

 그만큼 수면은 생체리듬에 중요한데, 조명이 바로 수면의 질과 기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바꿔 말하면 조명으로 생체리듬과 컨디션을 개선할 수 있단 얘기다.

 국민대 도영락(생명나노화학) 교수는 “24시간 주기로 나타나는 일주기 생체리듬이 어긋나면 월요병·수면장애·우울증 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며 “백색 LED 광원의 색상과 색온도를 자연광처럼 조절해 이를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햇빛의 색과 비슷한 노랑계열 조명으로 가뿐하게 잠에서 깰 수 있고 잠들기 한두 시간 전 검붉은 조명으로 멜라토닌 생성을 촉진해 수면을 유도하는 것이다. 글로벌 조명·가전기업인 필립스가 개발한 ‘기상조명’ ‘에너지업(energy-up) 에너지조명’이 대표적인 생체리듬 조절 조명이다. 알람 소리 대신 특정 시간에 가장 적합한 빛의 조도를 적용해 자연스럽게 깨어날 수 있게 한다. 흐린 날이나 빛이 잘 들지 않는 곳에서 오래 생활하는 사람들에겐 맑은 날 자연 채광을 그대로 재현한 조명으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학습효과를 높이고 질병을 완화해주는 ‘똑똑한 조명’도 이미 상용화되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의 한 초등학교에는 선생님 못지않은 듬직한 조명 제어 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이 시스템은 ‘활동’ ‘정숙’ ‘학습’ 모드에 따라 각기 다른 세기와 색의 빛을 발한다. 활동 모드에서는 차가운 톤의 빛을 강하게, 정숙 모드에서는 따뜻한 톤의 빛을 보통으로 내보내는 방식이다. 기본적으로는 자연광과 가장 비슷한 조명으로 신체를 기분 좋게 깨어 있게 하는 ‘코티솔’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킨다. 독일 함부르크-에펜도르프 대학 병원이 이 학교에 와서 비교실험을 했는데 일반 교실에서 공부한 학생들보다 읽기 속도가 35% 향상되고 읽는 동안 실수도 45% 줄었다. 특히 정숙 모드에서 학습한 학생들은 과잉행동이 약 76% 감소해 어린 학생들의 정서와 학습 태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필립스 조명사업부문 이대우 부장은 “해외에서는 수학 모드, 창의력 모드 등 수업에 맞는 조명시스템으로 학습효과를 극대화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며 “필립스의 ‘다이내믹 라이팅’을 채택한 학교에서도 좋은 피드백이 오고 있다”고 전했다.

 인터넷 게임에선 여신 같은 아름다운 마법사가 눈부신 빛으로 다친 전사를 치유하곤 한다. 게임 속 얘기만은 아니다. 현대 의학에서 조명은 질병치료에 활발히 쓰이고 있다. 4000룩스(lux·1룩스는 촛불 하나의 밝기) 이상의 밝은 빛을 이용해 뇌가 기분을 쾌활하게 하는 세로토닌을 왕성하게 분비하게 하면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된다.

 네이처브라이트사의 ‘선터치플러스’란 제품은 푸른 하늘의 광활한 빛의 스펙트럼을 그대로 재현해 사람에게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 빛을 쬐면 마치 주말 낮에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공원에서 산책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또 음이온을 분출시켜 폭포나 숲 같은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치료 효과를 얻도록 했다. 실제로 햇빛이 잘 드는 병실의 환자는 스트레스와 고통이 적고 약물 치료도 시간당 최고 22%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LED 조명은 신체의 통증도 완화해준다. 피부와 신체 조직이 식물처럼 빛을 흡수해 에너지로 바꾼다는 점에 착안했다. 라이트스팀사에서 개발한 조명은 적색·암적색·적외선을 포함한 72가지 치료 효과가 있는 LED 파장과 광원 색을 동시다발적으로 분출한다. 이 빛에너지가 피부에 직접 닿아 콜라겐과 탄력소 생성을 촉진하고 해로운 박테리아를 파괴해 혈액순환을 돕는다. 주로 근육통과 관절염 통증, 신체 경직을 완화하고 멍도 빨리 사라지게 한다.

 빛의 세기와 파장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LED 조명을 이용하면 도심에서도 언제든 ‘친환경 식물’을 재배할 수 있다. 식물이 태양광보다 청색광 비중을 높인 조명을 받으면 비타민·베타카로틴 같은 항산화 물질을 더 많이 만들며 자라난다.

 국내 중소기업인 아이티컨퍼런스의 ‘LED조명 식물재배기’도 이런 원리를 이용했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가정용 식물재배기는 LED 조명 가격이 점차 떨어지면서 30만~100만원대 정도로 저렴해졌다. 상추나 치커리·청경채 등 우리가 자주 먹는 엽채류를 최대 32포기까지 직접 재배할 수 있다.

 자외선 LED를 이용한 살균·소독·청정 조명은 기존 수은 자외선 램프를 대체할 ‘차세대 살균용 광원’으로 뜨는 분야다. 국내 기업들이 세계적으로도 우위를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서울반도체의 계열사인 서울바이오시스는 파장이 짧은 자외선 LED 분야에서 우수한 기술을 가지고 휴대용 살균기, 차량용 공기청정기, 가정용 공기청정기를 내놨다. LG이노텍 역시 살균용 자외선 LED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존 칩 설계 구조를 바꿔 광출력을 크게 높이는 방법으로 살균 성능을 향상시켰다. 이 회사의 자외선 LED는 5L 대형 물통에 담긴 대장균·살모넬라균을 25분 만에 99.99% 없애 살균력을 인정받았다. 프랑스 시장조사기관 욜 디벨롭먼트에 따르면 자외선 LED시장은 올해 948억원 규모에서 2015년 1341억원으로 30% 가까이 급성장할 전망이다.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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