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할 괴로움 있어 세상 살 만 … 빗자루질 하니 번뇌까지 싹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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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원철 스님은 크고 작은 일 앞에서 결단을 해야 할 때 농담처럼 이렇게 되뇐다. “죽어도 좋고, 살면 더 좋고!” [사진 불광출판사]

“우리가 외국에 나가있을 때도 집이 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프리카에 있든, 남미에 있든 집은 늘 가까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마음의 고향, 불교에서 말하는 ‘본래 자리’도 마찬가지다. 깨달음의 길은 어디서 출발하더라도 멀지 않다.”

 불교계에서 ‘글쟁이 스님’으로 통하는 원철 스님이 산사의 깨우침을 모은 에세이집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불광출판사)를 펴냈다. 서울에서 7년가량 지내며 스스로 ‘수도승(首都僧·서울에 사는 승려)’이라 칭했던 그는 2012년 해인사로 내려가 승가대학장을 맡고 있다. 24일 간만에 서울을 찾은 그는 “각자가 선 자리가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원철 스님은 ‘감인(堪忍·감당하고 참다)’이란 단어를 꺼냈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娑婆世界)를 ‘감인토(堪忍土)’라고 부른다. 견디고 참아야 하는 세상이란 뜻이다. 그렇게 보면 내가 감당하지 못할 고통이란 세상에 없다. 오히려 감당할 괴로움이 있기에 살 만한 땅이 아니겠나.”

 스님은 그런 괴로움을 치우는 간단한 팁을 일러주었다. “붓다에게는 두 글자도 못 외우는 제자가 있었다. 앞의 글자를 외우면 뒷글자를 잊어버리는 둔재였다. 그가 택한 수행법은 마당 쓸기였다. 그는 빗자루질을 반복하다가 잡념까지 제거하는 체험을 했다. 그러니 마음이 어수선할 때는 우선 주변 청소부터 할 일이다.” 원철 스님은 그걸 한마디로 “부지런함이 번뇌를 쓸어버린다”고 표현했다. 마당 쓸듯이 괴로움을 옆으로 쓸어버리는 방법이라고 했다.

 원철 스님은 산사에서 김장을 하면서도 깨우침을 일구어낸다. “자연산 배추는 별로 볼품이 없지만 어디에 내놓더라도 맛과 향은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며 “배추로서는 아름다운 마무리겠지만 김치로서는 새로운 시작인 셈”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또 출가자든 아니든 끝없이 자기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려면 책을 많이 읽을 수도 있고, 일을 많이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잘하는 일보다 못하는 일을 찾아서 할 때 자신이 더 많이 바뀌더라”고 했다. 책 중간중간에 담긴 강일구 화백의 그림은 산사의 풍치와 절묘한 궁합을 이룬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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