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나도 그때 악마를 보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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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본에선 아직도 강제로 위안부를 동원한 적이 없다고 우기는데요?”

 “무슨 소리야. 동네마다 난리가 났었는데. 처음엔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고 했어. 그런데도 돈 벌러 간다는 애가 많지 않으니깐 동네마다 할당된 수를 채울 수가 없는 거야. 나중엔 길가에서 밭에서 보이는 족족 다 잡아갔어. 어휴 딸한테 남자 옷 입히는 집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없는 집 딸만 불쌍하지. 찢어지게 가난했던 뒷집 갸가 잡혀가면서 이왕 잡혀가는 거 공장 가서 돈이나 벌어 부모님 호강시키겠다더니 그런 몹쓸 짓을 시킬 줄 누가 알았남.” 어느 할아버지의 증언이다. 그 현장을 고스란히 지켜보셨단다. “강제동원하는 걸 봤다고 증인 노릇 좀 하시지요” 했더니 “무슨 좋은 일이라고 나서겠어. 그걸 본 것도 죄인인 주제에” 하신다.

 이제야 알겠다. 그들이 “내가 봤소” 하며 공개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뒤에서 침묵하는 이유를. 우리의 뇌는 신비하다. 괴로운 기억은 저장하지 않으려 한단다. 마치 없었던 일같이 말이다. 위안부 문제. 인간은 잘못을 할 수도 있다. 또 잘못은 진정성 있는 사과 하나로 용서받을 수도 있다. 피해자의 피 토하는 고백은 물론 강제동원 문서며 기록, 동원에 참가했던 일본인의 양심고백. 모두 다 부정하며 ‘강제동원 증거’를 끝없이 요구하는 일본. 사건마다 목격자가 있고, 그 목격자의 말은 사건 해결의 제일 중요한 열쇠다.

 희미한 기억이나마 위안부를 동원하던 그 시절 바로 그때. 남장 탓에 위기를 모면한 사람, 옆집 아이 잡혀가는 걸 본 사람, 잡혀가던 트럭에서 뛰어내린 사람. 그들이 바로 일본에서 끝없이 요구하는 ‘강제동원의 목격자이며 증거’다.

 양심선언을 한 일본인 얘긴 간간이 들어봤지만 한국인 목격자의 공개적인 목격담은 아직까지 못 들어봤다. 이제 그 기억을 가슴에서 꺼내 말하자. 운 좋아 안 잡혀간 사람, 잡혀가는 걸 본 사람과 마지못해 도운 사람, 모두들 혼자 산 것이 죄스러워 그 기억을 처박았다면, 더 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 말이다.

 피해자의 눈물겨운 고백보다 현장을 보지도 못한 우리들의 말보다, “당신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여자애들을 끌고 가는 걸 내 눈으로 똑바로 봤소.” 이렇게 고백하는 우리 할아버지·할머니들의 직접적인 증언이 법 심판대에서 훨씬 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외교적 전략으로만 이용하지 말고 이참에 어르신들의 도움을 받아 ‘강제동원 증인 성명서’라도 만들어라.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