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보여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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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독립기념관」건립계획이 구체화해서 그 건립위원회가 발기되었다. 광복이후 줄곧 논의만 되고 결실을 보지 못하던「독립기념관」이 드디어 이루어진다니 우선 반갑다.
그러나 일면 이 독립기념관 건립계획이 갑작스레 제기되고 숨돌릴 사이 없이 추진되고 있는 사실에 대해 일말의 우려도 없지 않다.
그것은 이번 독립기념관 건립논의가 불과 20여일 전에 여당에 의해 제기되고 벌써 건립추진위가 구성되어 내년 중에 착공한다는 등 구체적 세부 문제까지 「결정」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것이다.
더욱이 독립기념관 건립논의 자체가 일본의 교과서 왜곡사건의 와중에서 제기되었다는 것이 별로 떳떳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독립기념관」건립추진의 조급함이 또한 어색하다는 뜻이다.
이는 물론 민족정신의 교육장이요 민족수난사의 역사적 전시장이 될 이 같은 기념관이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민족의 존재 증명이 되고 민족의 영원한 단결과 지속을 상징하는 기념관의 건립이 중요한 만큼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족의 주체적 판단과 독립적 의지에 충만한 순수한 민족정신의 합의와 결단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점에서 우리는 우선 어느 사이엔가 결정된「독립기념관」이란 명칭자체에 대해서도 좀더 생각해 보도록 권하고 싶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우리에게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또 외세의 간섭이나 억제를 배격하고 민족의 주체성과 독립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독립」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국토와 민족의 분단을 경험하며 「독립」의 의미를 실감하지 못한다. 뿐더러 우리는 「독립」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단결과 지속 속에서 이루어야할 「민족의 긍지」에 대한 지향도 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외세에 속박되지 않겠다는 의지는「독립」속에 충분히 표현되겠으나 민족의 긍지와 전진의 기상은 거기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이 인식되어야겠다.
우리의 미래를 보는 눈은 좀더 원대해야겠고 우리의 현실적 과제도「독립」이란 개념만으로는 충분히 소화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크다.
그 점에서 「민족박물관」혹은 「민족수난사박물관」쪽으로 개명해야 옳다고 본다. 그뿐만 아니라 이 기념관의 건립추진을 맡은 사람들이 국민의 대표가 되기에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어야겠다.
또 5백억원 모금에 대해서도 좀더 신중해야 할 줄 믿는다. 기념관이 민족의지의 표상이라면 당연히 훌륭해야 할 것은 물론이겠으나 엄청난 기금을 투입해서 청사를 극한 거대한 건물을 지어놓는다고 뜻 깊은 것은 아니다.
적은 돈을 들여서 짓더라도 거기에 민족의 열이 살아있고 그 운용이 효과적이면 된다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기념유물의 수집, 보관, 전시에 대해서도 지금부터 깊은 연구가 있어야겠다. 알려진 바로는 전시유물은 운양호 침입에서부터 해방 때까지의 것을 18실에 24개 사건 및 인물로 나눠 전시한다고 한다.
이런 계획은 실로 성급한 것으로「독립기념관」이 될지「민족박물관」이 될지도 모르는 현실에서 기념관의 전시내용을 미리 정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더욱이 이 기념관이 성격이 모호한 박물관으로 되지 않을 까도 걱정된다. 고대, 중세, 근세, 현대 관까지 세워 국난 극복 사는 물론 한국의 발전상까지 담겠다고 하는 의도가 너무 안역하기 때문이다.
벌써 여러 번 지적했거니와 이 기념관은 좋은 의미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그 의미의 한계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종합박물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 과학, 민속,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박물관 기능을 포함하는 종합박물관이 충실한 내용을 가지고 건립되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의 요구다.
그런 만큼「민족수난사박물관」은 그것과는 다른 「독특한」의미를 가진 특수박물관으로 존립하면 그만 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부질없는 낭비와 중복으로 민족의 고귀한 정신적 유산들을 손상하거나 체계 없이 수장·전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다.
「독립기념관」건립추진에 당하여 국민의 합의를 기반으로 한 유누 없는 사업이 되도록 모든 사회성원이 신중한 연구와 숨김없는 질정이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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