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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정부 「성의」에 전부가 걸려|일본 교과서 “책임시정” 약속이후 지켜봐야 할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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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교과서 문제는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의「책임시정」약속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앞으로 일본의 약속이행이 과제로 남게됐다.
일본정부의 담화내용과 관계장관의 발언을 총합하면 일본정부가 앞으로 취할 조치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9월초 교과용 도서검정 조사심의회에 검정기준의 일부 개정을 위한 자문을 의뢰, 자문기간은 2개월 정도로 예상된다.
▲현재 검정신청을 받고있는 84년도 사용교과서는 새로운 기준에 따라 검정한다.
▲지난 6월 25일로 검정이 끝난 83년도 사용교과서는 3년 주기의「개정검정」시기를 1년 앞당기기로 함에 따라 83년 4월부터 「개경검정」신청을 받아 84년 3월까지 검정을 끝내고 85년부터 사용, 이때 현재 문제된 부분을 시정.
▲금년도 검정 완료된 교과서는 83년과 84년 2년간 그대로 사용하되 문부상 성명과 「문부 광보」를 통해 「한일공동코뮈니케」의 정신이 교육현장에서 반영되도록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조처는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며 「책임시정」약속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부분을 어떤 내용으로 고치느냐 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대로 문제로 남는다.
따라서 일본정부의 「책임시정」약속을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내용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인가 하는 불안을 감출 수 없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린 의미에서 앞으로의 절차에는 경계해야 할 몇 가지 함정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하나가 교과용 도서검정조사심의회의 심의내용이다. 심의회의 심의라는 이름을 빌어 검정기준이 환골탈태돼 정부약속과는 거리가 먼 것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심의회의 심의를 거친다는 조항이 이른바 자민당 문부족의 갑작스런 제의에 의해 삽입됐다는 정부견해 작성과정이 이 같은 불안을 더욱 높여준다.
또 한가지는 집필자가 예컨대 「침략」이 아닌 「진출」이라는 교과서를 쓰는 경우 이를 적극적으로 「침략」으로 고치도록 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일본의 검정제도는 교과서 회사의 신청에 대해 정부가 의견을 붙이는 형식이어서 일 정부는 집필자가 쓴 왜곡된 내용에 대해서 이를 소극적으로 방관할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과서의 어느 부분을 고칠 것이냐 하는 것이 앞으로 남은 가장 중요한 과제다.
이에 대해 「미야자와」(궁택선일) 관방장관은 담화문을 발표한 뒤의 기자회견에서『한국·중공 양국 정부의 의견을 듣겠다』고 말함으로써 앞으로 외교 루트를 통해 시정요구를 구체적으로 듣는 등 협의를 거칠 뜻을 밝힌 바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앞으로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한일 간에 시정부분과 내용에 대한 협의절차를 갖게 된다.
그러나 「오가와」(소천평이) 문부상은 같은 날의 기자회견에서『시정조치는 어디까지나 문부성의 자주적 판단에 따라 하는 것으로 외부의 압력에 굴복한다든가 정치가 교육에 개입하는 것 등을 허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앞으로 한국과의 관계, 일본 내부의 관계에서 분쟁이 있을 소지를 남겨놓고 있다.
문부성은 또 83년과 84년도 사용교과서에 대해 교육현장을 통해 잘못을 시정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으나 이것이 현장에서 어느 정도 충실히 이행될 것인지도 문제이며, 이를 빙자한 좌익 일 교조의 형태도 주목의 대상이 된다.
한편 이번 일본정부의 책임시정 약속으로 일본국내에는 교과서 문제에 대해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좌경화 된 집필자가 한국과 중공이 문제삼은 부분 뿐 아니라 천황제와 자민당에 대한 비관 등 국내문제를 모두 들고 나와 문부성을 괴롭힐 가능성이 크다.
이를 계기로 혁신세력과 보수세력 간의 교과서 분쟁이 다시 가열될 수도 있고 일본 문부족은 이 같은 사태를 예견, 검정제도를 더욱 강화할지도 모른다.
또 일본 여론은 이번 조치에 대해 「스즈끼」(영목선행) 정원의 우유부단으로 결단시기가 늦어져 대외적인 이미지 손상이 크게 됐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반대로 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비판도 있다.
어쨌든 이번 조치가 한국으로부터는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지만 중공의 반응이 미지수로 남아있는 만큼 9윌 중공방문과 11월 총재선거를 앞둔「스즈끼」수상으로서는 아직도 안정된 상태가 아니며, 교과서를 둘러싼 한-일, 일-중공 관계도 많은 숙제를 남기고 있다 하겠다.
【동경=신성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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