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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경마장 등은 '굴뚝'… 흐지부지된 금연구역 확대 2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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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달 17일 오후 2시 과천시 주암동 서울경마공원 2층 야외 관람석. 곳곳에서 담배 연기가 피어 올랐다. 30분 뒤 경주가 시작된 후에는 관람석 전체가 뿌연 담배 연기로 뒤덮였다. 관람석 뒤편의 흡연실을 이용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관람석 입구와 펜스 곳곳에 '금연구역'이라는 스티커나 안내판이 붙어있었지만 무시됐다.

김모(40.부산광역시)씨는 "가족과 함께 처음으로 경마장을 찾았는데 담배 연기 때문에 눈이 따가워 경주를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2003년 4월 정부의 강력한 금연정책에 따라 금연시설이 8만여 곳에서 33만 곳으로 대폭 확대됐다. 하지만 금연구역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경찰은 일손 부족 등을 이유로 적극적인 단속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민원이 제기돼야 마지못해 단속에 나서는 정도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금연구역 추가 확대 등 가시적인 행정조치에만 매달릴 뿐 금연정책 시행 실태를 점검하거나 정책의 실효를 높이는 데는 소홀하다.

◆ 무용지물 된 금연구역=본지가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모 지역의 PC방 50곳을 점검한 결과 3, 4곳만이 금연 규정을 제대로 지키고 있었다. 현행 건강증진법 시행규칙은 PC방이나 만화방 영업장의 절반 이상을 금연구역으로 운영토록 하고 있다. 또 흡연구역과 완전히 분리시키는 칸막이나 벽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취재진이 PC방을 점검한 결과 50곳 중 47곳은 금연구역 면적이 전체 면적의 절반에 못 미쳤다. 이 중 14곳은 금연구역 표시만 있을 뿐 흡연구역과 별도의 구분이 없었다. 23곳은 금연.흡연구역의 칸막이가 너무 낮아 담배 연기가 금연구역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효과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PC방을 찾은 초.중.고생들은 무방비로 담배 연기에 노출돼 있었다. PC방에서 만난 육모(12.초등학교 6년)양은 "담배 연기가 너무 싫기도 하지만 자주 마시다 보니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삼성동 일대 30개 빌딩 중 19곳에서 흡연구역이 아닌 건물 내 비상계단에서 흡연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건물 연면적 900평 이상의 사무용 건물은 금연(흡연실에서는 가능)해야 한다.

흡연자 박모씨는 "담배 때문에 폐암에 걸리든 말든 그건 내 일 아니냐"며 "여기(계단)서도 못 피우게 하는 건 횡포다. 담배 연기가 (사무실로) 조금 새 들어간다고 어떻게 되겠느냐"고 주장했다.

◆ 공공장소도 무법지대=지하철 1호선 국철역의 상당수 지상 승강장에서도 금연 규정이 무시되고 있다. 신도림역 공익요원 황진(25)씨는 "하루에도 20~30명 이상이 승강장에서 담배를 피운다. 주의를 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천식을 앓고 있는 한 직장인은 "수원 화서역에서 전철을 기다릴 때 흡연자들 때문에 너무 괴롭다"며 "금정역에서는 전철 문이 열리면 담배 연기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서울역 KTX 승강장 6곳에는 흡연자들을 위해 아예 재떨이가 설치돼 있다.

◆ 단속 손 놓은 경찰=금연구역에서 흡연하면 2만~3만원의 범칙금을 내야 한다. 단속권은 경찰만이 갖고 있다. 금연구역을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 건물주나 업주는 200만~3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건물주나 업주에 대한 단속은 시.군.구가 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금연구역의 흡연자는 별도로 단속하지 않는다"며 "단속보다는 지도.계도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민원이 들어오면 나가서 범칙금을 물린다"고 털어놓았다. 느슨한 단속 때문에 금연구역 위반 범칙금을 부과하거나 주의처분을 내린 건수는 2002년 86만여 건에서 지난해에는 8만5000여 건으로 크게 줄었다.

아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곳도 많다. ▶45평 미만의 소규모 식당▶900평 미만의 소형 건물▶버스정류장▶택시▶동사무소나 지구대 등 300평 미만의 소형 공공건물 등은 금연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김일순 회장은 "흡연자가 소수가 되면 이들이 규정을 안 지킬 수 없을 것"이라며 "금연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이나 홍보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강승민 기자, 오혜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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