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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무상급식 이대로 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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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강홍준
강홍준 기자 중앙일보 데스크

논쟁의 초점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최근 무상급식 예산을 경남도교육청에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무상급식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무상급식은 의무교육과 같은 것이므로 현재처럼 급식 혜택 대상자의 조건이나 자격을 가리지 않고 무상으로 계속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과 무상급식으로 인해 지방자치단체·교육청의 재정난이 심각해지고 있어 급식 대상자를 저소득층 자녀 등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서로 대립하는 두 의견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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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끼는 의무교육이다

구희현
경기모바일과학고 교사
(친환경학교급식 경기도
운동본부 상임대표)

우리 자녀들은 15년 동안 매일 한 끼 이상 학교 급식을 먹는다. 급식은 자라나는 아이들의 심신 발달을 도모하고 이들이 미래의 건강한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런 측면에서 급식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더 나아가 온 국민이 책임져야 할 중차대한 일이다. 또한 학교 급식은 헌법 31조와 학교급식법 제9조에 기초한 의무교육으로 봐야 한다. 학생의 권리이자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와 역할이다. 그런데도 일부 어른들은 아이들의 밥그릇에 대해 정치적·이념적 잣대를 끊임없이 들이대고 논쟁을 일으키며 저급한 공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현재의 모습이 아이들 눈에는 어떻게 비쳐질지 걱정스럽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처지에 따라 선별적으로 급식을 제공하는 방안은 자라나는 아이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준다. 그렇기 때문에 선별 급식은 교육적으로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이며, 자칫 제도와 정치 노선이 사회적 차별을 앞장서서 조장하고 있는 꼴이 되고 있다.

 무상급식 실시 이전에는 차상위 계층의 학부모들이 급식비 면제를 받으려면 건강보험증 사본, 보험료 납부액 확인자료, 기초생활수급권자나 한부모가정이라는 통합신청서를 제출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과 부모의 환경이 공개되고 급우들에게 알려지게 되면, 감수성이 예민하고 자존심이 강한 아이들은 수치심을 느끼기도 하고 평소 생활에서 위축되는 게 사실이다. 또한 급식비 미납 학생은 학교에 따라 사정은 다르겠으나 대체로 절반 이상 체납된 경우가 상당했다. 담임선생님이 급식비를 걷기 위해 학부모나 학생에게 급식비 납부를 독촉하기도 했다. 교사에게도 이런 일은 매우 곤혹스러웠다. ‘도둑 급식’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과 같이 여러 사정과 형편으로 급식비를 안 내고 급식하는 학생도 늘어나서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일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무상급식에 대해 학부모나 학생들의 반응은 일관된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급식비가 부담스러웠는데 급식비를 안 내도 돼 가계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학생들 역시 “급식비 부담 없이 친구들과 맛있게 먹어서 너무 좋다”고 한다. 현재 일자리 부족, 비정규직 증가, 사교육비 증가 등으로 인해 사회와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돼 가고 있는 상황에서 학부모에게 급식비 부담을 경감해준다면 이는 가계경제에 큰 보탬이 된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의무교육의 일환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함으로써 그 혜택은 재벌의 손자부터 기초생활수급권자의 자녀까지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 덕분에 교육적 가치와 사회적 연대감이 제고되고 장래에 사회통합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부자의 자녀들까지 무상급식을 주느냐”며 핀잔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급식은 공교육과 마찬가지로 의무교육의 일환이므로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혜택을 주는 것이 타당하다. 만일 무상급식을 받는 부자들의 마음이 불편하다면 세금을 더 많이 내든가, 아니면 질 좋은 급식을 위해 학교 등에 기부금을 더 많이 기탁하면 될 것이다.

 2010년 무상급식 논쟁은 국민의 선거와 사회적 합의로 정리가 됐다. 그런데도 또다시 국가의 의무 급식정책을 흔들어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세력들이 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아이들에게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외국에서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마을 전체가 나선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어른들은 아이들의 한 끼 밥에 너무 인색해 이미 주었던 숟가락까지 빼앗을 참인가. 이번 기회에 정부가 ‘의무급식법’을 제정하는 등 미래 세대에 대해 책무성을 가져주길 바란다. 보육에서부터 고교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생들을 잘 먹이고 잘 가르쳐주는 게 방법이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기성세대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노후의 복지를 책임져 줄 주인공이란 점이다. 예산 타령의 허울로 아이들을 울려서는 안 될 것이다.

구희현 경기모바일과학고 교사 (친환경학교급식 경기도 운동본부 상임대표)

공짜 밥으로 혹독한 대가 치른다

박은종
공주대 겸임교수

최근 경상남도가 내년도 학생 무상급식비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무상복지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 이후 지난 대선, 총선, 교육감 선거 등에서 표를 의식한 여야의 복지 포퓰리즘 선심 공세가 고스란히 ‘재정 파탄’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선거철만 되면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사탕발림식 무상 공약을 남발한 정당과 정치인들의 행태가 이와 같은 무상급식 논란을 야기했다. 201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무상급식은 시행 4년 만에 예산 편성을 둘러싼 정부와 시·도교육청, 시·도와 시·도교육청 간 이견과 갈등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무상급식비 지원 중단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무리한 무상급식에 따른 재정 부담으로 봐야 한다.

 2014년 기준으로 무상급식은 전국 초·중·고 학생 643만6000여 명 중 68.1%인 445만 명이 혜택을 받고 있고, 재원 부담은 교육청이 1조5666억원(59.0%), 지자체가 1조902억원(41.0%)을 각각 부담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가 무상급식으로 인해 예산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실제 전국 244개 기초자치단체 중 32%인 78개 시·군·구가 자체 수입으로 인건비도 충당 못 할 정도로 재정자립도가 낮은 상황이어서 무상급식을 포함한 소위 무상 교육정책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는 불가피한 실정이다.

 사실 무상급식을 포함한 무상 정책은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중 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재정자립도, 재정 건전성에 달려 있다. 국가와 지자체의 경제성장과 경제 여건이 나아지면 선별적 복지에서 보편적 복지로 확대되는 것이 수순이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지난 6·4 지방선거 공약과 선거 과정에서 확산된 무상급식, 누리과정, 무상교복, 반값 등록금 등 보편적 복지의 폐해가 현실화된 지금이 바로 우리나라 무상 복지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위한 적절한 시점이다. 무상 정책이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는 지적과 증세 없는 복지 확대가 허구라는 사실도 재인식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 같은 주장은 두 가지 사례에서 확인된다. 첫째, 무상급식 도입 이후 학교의 음식물쓰레기가 급증해 지난 4년간 잔반 처리 비용만 388억여원이 들었다. 많은 학생이 ‘맛 없는 공짜 밥’을 그냥 버린다는 방증이다. 둘째, 국민여론의 변동이다. 11월 11일부터 13일까지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6%가 ‘재원을 고려해 소득 상위계층을 제외한 선별적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고 응답한 반면 ‘소득에 상관없이 전면 무상급식을 계속해야 한다’는 응답은 31%에 그친 바 있다.

 물론 이미 시행되고 있는 무상급식을 철회하는 것은 아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되돌리는 과정이 어렵다고 해 옳지 않은 것을 지속하면 현재 호미로 막을 것을 미래에는 가래로도 막지 못할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국민과 주민의 동의를 얻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바람직한 것이다.

 무상급식을 선별적 복지체제로 바꾸는 경우에도 사회적 배려 대상 계층의 학생에게는 무상 이상으로 지원해 경제적 걱정 없이 마음껏 꿈과 끼를 발휘하도록 보듬어 주어야 한다. 그들이 눈칫밥이 아니라 당당한 식사를 하고 미래 이 나라의 주역으로 자라도록 배려해야 한다.

 결국 현행 무상급식의 지속은 국가와 지자체의 재정 악화로 후대에 큰 부담이 된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현실적으로는 달콤한 유혹이 무상 정책이지만 장기적 국가정책, 지자체 비전 수행에서는 독약과 같은 것이다. 지자체와 국가가 빚더미에 앉고 채무불이행(default)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점을 외면해선 안 된다. 무상급식 지속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학생들에게 먹이는 ‘그까짓 밥 한 끼’ 갖고 야단이냐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우리는 훗날 그 ‘밥 한 끼’ 때문에 혹독한 대가를 치를 우려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박은종 공주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