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기댈 곳 하나 없던 나에게 희망을 빌려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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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 진교창씨(왼쪽)가 ‘신나는 조합’의 지역자원활동가 이화랑씨와 중고 가전제품 수리 사업에 대해 의논하고 있다. ‘신나는 조합’ 은 무담보 대출자가 창업한 뒤에 도 조언을 해준다. 양영석 인턴기자

중고 가전제품을 수리하는 가게인 '북악전자'를 운영하는 진교창(48)씨. 그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노숙자 쉼터에서 생활했다. 2년 전 약품 도매사업을 하다 사기를 당해 큰 빚을 지고 거리로 나왔다. 절망의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희망을 안겨준 곳은 '신나는 조합'이다. 4월 진씨는 4명의 노숙자 동료와 함께 '신나는 조합'에서 담보 없이 1000만원을 빌려 창업했다. 북악전자는 요즘 한 달에 1200만~1500만원의 매출을 올린다. 이 중 진씨는 150만원 정도를 받아간다. 진씨는 "재활의 기회를 준 '신나는 조합'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신나는 조합'과 같은 곳을 마이크로 크레디트(무담보 소액대출) 은행이라고 부른다. 빈민층에 돈을 빌려줘 창업을 하도록 해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게 목적이다. 쉽게 말해 '물고기를 나눠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세워진 은행이다. 우리나라에선 '신나는 조합' 이외에 '사회연대은행' '아름다운 재단' 등에서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을 한다. 서민 대출을 줄이는 추세인 시중 은행과 달리 이 은행들은 최근 문턱을 확 낮췄다. 유엔은 올해를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해'로 정하기도 했다. 1983년 방글라데시에서 세워진 그라민 은행이 시초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지만 상환율은 일반 은행보다 높은 97%(사회연대은행의 경우) 정도라고 한다. 창업을 원하는 사람이 사업계획서를 보내면 해당 단체가 현장 실사와 면접을 통해 사업 능력과 의지를 철저히 심사하기 때문이다. 같은 목적으로 설립됐지만 단체마다 지원 대상은 조금씩 다르다.

사회연대은행은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 층을 돕는데, 미용.수공업 등 전문적인 기술과 경험이 있는 사람이 유리하다. 사업을 바꾸거나 사업을 하다가 자금난을 겪은 경우도 대출이 가능하다. '신나는 조합'은 개인에게는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3~5명이 한 팀을 꾸려 공동 창업을 해야 대출해 준다. '신나는 조합'이 자활공동체를 만드는 방식이라면 사회연대은행은 빈곤층에 전문성 높은 경영 기법을 제공하는 특성이 강하다. 아름다운 재단은 저소득 여성 가장이 지원 대상이다. 또 사회연대은행과 비슷하게 창업 경험이 없는 사람은 대출받기가 까다롭다.

마이크로 크레디트 단체들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금을 지원할 뿐 아니라 사업이 안정궤도에 오르고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사전교육과 사후관리를 한다. 사회연대은행의 경우 창업.부동산.요리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조언한다. 또 창업한 사람끼리 네트워크를 만들도록 연결해 주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전북 정읍에 두부전문 음식점 '두부골 두부집'을 차린 주옥녀(49)씨도 사전교육과 사후관리의 덕을 톡톡히 봤다. 주씨는 동료 4명과 함께 사회연대은행에서 3000만원을 빌려 음식점을 차렸다. 주씨는 두부가게를 운영했으므로 두부 제조법은 알았지만 음식조리 경험은 많지 않았다. 사회연대은행은 주씨에게 호텔 조리사를 보내 두부 음식을 잘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또 창업 이후 한 달에 한 번씩 주씨 음식점의 영업 현황을 확인했고, 유행하는 메뉴를 개발하도록 음식 전문가와의 상담을 주선해줬다.

아름다운 재단과 사회연대은행은 자신들의 지원을 받아 창업한 업소에 각각 '희망 가게'와 '함께 만드는 세상'이라는 간판을 달도록 했다. 지금까지 희망 가게는 5호점, 함께 만드는 세상은 134호점을 열었다. 아름다운 재단 기금사업팀 정경훈(30) 팀장은 "어려운 가정이 재활하는데 적합한 지원 방법을 개발해 더 많은 이웃을 돕고 싶다"면서 "지원금은 개인이나 기업의 정성으로 마련되니 많은 후원을 바란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차상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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