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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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장마 끝 무더위가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다. 지난 4일 강릉지방은 34.7도까지 올라갔고 그밖의 지방도 30도를 넘어섰다. 뙤약볕에 아스팔트가 녹아내려 차선까지 일그러졌다.
불쾌지수 또한 무섭게 치솟고 있다. 포항이 84, 군산이 83, 서울·대구 등지가 거의 82였다. 불쾌지수가 70만 넘어도 사람들이 짜증을 부린다니까 불쾌한 기분에 공연한 마찰이 빈번할건 넉넉히 짐작된다.
무더위 때문에 사고도 많다. 한증막 더위로 피서에 나선 인파 가운데 익사사고가 늘고 있다. 강원도에서만 4일 하루 10명이었다. 속초에선 수학여행 온 학생과 피서객 등 95명이 집단식중독을 일으켰다. 경북 문경에선 무더위를 피해 길가에 앉아있던 3명이 트럭에 치여 사상.
전력수요도 부쩍 늘어났다. 4일 하오 3시의 전력소비량은 6백 23만 6천 kw. 올들어 두번째의 기록이다.
중앙기상대는 이런 무더위가 고온 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올해 기상상태는 다분히「이상기」가 있다.
7월 말까지의 한발은 전례 없는 것이었다. 그에 이어 여름장마가 때늦은 해갈을 선사했다. 1주일 정도에 그치는 아주 짧은 장마였다. 그 뒤에 찾아온 것이 불볕 무더위.
어제 오늘은 꾸물거리는 날씨 속에 땀이 후줄근하게 온몸을 적신다.
일본에선 예년에 비해 장마가 늦다고 괴이해 한다. 오호츠크 고기압이 강하고 태평양고기압이 약한 때문이란 설명이다.
태평양고기압이 약한 것은 봄부터 태평양의 표면해수온도가 평년보다 1도쯤 낮은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건 또 멕시코의 엘치천 화산이 분화해 그 분연이 햇빛을 가린 때문이란 견해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무더위가 몰려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러나 이 무더위도 사실은 대단한건 아니다. 1944년 8월 1일 경북 영주에선 46도를 기록한 적도 있다.
세계지리학회의 공인 기록으로는 22년 9월 13일 리비아의 알아지자의 58도를 들고 있다.
80년 여름 미국의 남부와 중서부를 덮쳤던 살인 무더위도 생각난다. 근 한달 동안 40도를 오르내리는 열파로 농작물이 전멸하고 소나 닭 등 가축이 떼죽음 했으며 인명만도 l천 2백명을 해친 더위였다. 그땐 아스팔트가 지글지글 끓어 제멋대로 갈라지고 가만히 세워둔 자동차의 유리창도 열파에 견디지 못해 저절로 깨져버렸다.
그에 비하면 지금 우리나라의 무더위는 더위 축에도 못 낄 판이다.
계속될 8월의 무더위가 그런 극한적인 살인무더위로 치닫지만은 않아야겠다. 아울러 복중 열장속 같은 세상살이도 좀 열기를 식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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