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칼럼] 核, 체제보장 방패 못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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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 문제와 관련해 지난달 23일 시작된 미.중.북 간의 3국 회담은 북한의 핵 보유 사실 주장으로 별다른 성과 없이 중단됐다. 여기서 북한은 미국이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지 않는 한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한 여러가지 대응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북한의 주장은 미국의 협조 없이는 체제 유지가 불가능함을 자인하는 것이다. 이의 근본적인 배경은 공산경제체제의 비효율성으로 북한이 현재의 체제로는 스스로 경제적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그렇다면 핵 보유 사실만으로 현재 북한 체제의 보장이 가능할까.

***舊 소련도 경제 실패로 붕괴

우리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소련을 위시한 동유럽 공산국가들의 붕괴 과정에서 한 국가의 체제는 외부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모순에 의해 몰락하게 됨을 경험했다. 1917년 레닌의 공산주의 혁명으로 시작된 공산주의 중앙계획경제체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쌍벽을 이루면서 경쟁을 했다.

그러나 인간의 타고난 본능을 무시한 공산주의 경제체제는 50년대 중반까지는 정치적인 강압 아래 경제적인 성과를 이루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 후 특유의 비효율로 인해 몰락 과정에 돌입하게 됐다.

정치체제의 불안이 두려워 주저하던 집권자들은 결국 이를 인식하고 생존을 위한 경제효율 증대 수단으로 전혀 경험하지 않았던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공산주의 정치체제와 경제체제가 동시에 명을 다하게 됐다.

오늘날 독일의 통일도 공산주의 체제 몰락의 결과로 이뤄진 것이지 서독 정부가 통일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달성한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독일 통일은 동독이 서독에 흡수된 것처럼 보이지만 동독인들 스스로가 생존을 위해 같은 민족국가인 서독으로의 통합을 원해 이뤄진 것이다. 이와 같이 독일 통일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가 공산체제와의 경쟁에서 승리한 결과인 것이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북한은 지금까지의 경제체제 운영으로는 자국민의 최소한의 생존마저 보장할 능력이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북한은 경제체제 전환을 목적으로 2002년 7월 1일부터 배급제를 폐지하고, 임금인상과 통화 증대를 실시했다.

이로써 북한은 시장에서의 가격 기능을 통한 물자배분을 택해 과거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의 체제붕괴 전 경제체제 전환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과거 체제전환 국가들에서와 같이 북한 주민들의 의식변화를 수반할 것이다.

만약 시장에서 물자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공급이 수요를 충당하지 못할 경우 이것은 주민들의 북한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될 것이다. 이 경우 북한 위정자들은 정치적 체제불안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경제체제를 변화시키지 않을 수도 없고, 변화시키자니 정치제제의 유지가 걱정스러운 것이다.

이것이 체제보장을 받으려는 북한의 계략이다. 북한은 경제체제 전환 과정에서 제3국들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해 미국의 보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北, 벼랑끝 核전략 언제까지

그러나 스스로의 모순으로 붕괴되는 한 국가의 정치체제는 타국의 보장이나 핵무기의 힘으로 유지될 수 없다. 과거 80년대 말 소련은 매년 외국의 지원 없이는 겨울을 날 수 없었다.

서방국가들은 초강대국 중 하나인 소련의 붕괴가 가져올 위험이 두려워 많은 지원을 했다. 그러나 소련의 체제는 세계를 파괴할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하고서도 결국 경제체제의 실패로 몰락했고 국가의 와해를 보게 됐다.

인간의 본능의 변화가 작동해 나타나는 체제의 붕괴는 가공할 무기로도 막을 수 없다. 따라서 체제보장을 위한 북한의 핵전략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김종인 前 청와대 경제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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