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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고 간 '고아들의 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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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 고 주경순 원장이 2002년 봄, 아이들과 함께 경남 마산시청에 나들이 갔다가 기념촬영을 했다. [애리원 제공]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전쟁 고아 등 불우아동들을 보살펴 온 경남 마산의 애리원 주경순(82) 원장. 그가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고 시신마저 기증한 채 빈손으로 28일 세상을 떠났다.

거창의 목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945년 일본 교토(京都) 산파학교를 졸업한 뒤 마산시 장군동에서 조산소를 운영했다.그의 아버지 주남선 목사는 일제시대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다가 평양 형무소에 투옥된 적이 있는 독립운동가.

조산소를 운영하던 그녀는 광복직후 거리에 넘쳐나는 불우한 어린이들을 돌보기로 결심하고 이듬해 마산 인애원을 설립해 부원장으로 일했다. 아이들이 늘어나자 조산원을 운영하며 번 돈을 모두 털어넣어 마산시 중앙동에 160여 평의 땅을 매입해 새 건물을 짓는 등 세 번이나 이사를 한 끝에 58년 완월동(부지 420평, 건물 3채)에 현재의 애리원을 세웠다.

정부 지원이라고는 전혀 없던 시절, 그녀는 해외 선교단체에 편지를 보내 후원을 받고 채소장사 등을 하면서 고아들의 생활비를 충당했다.

건강이 극도로 좋지 않았던 몇개월전까지도 아이들이 다칠까봐 테이프를 들고 다니며 책상 모서리 등에 붙이고 다닐 정도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

아이들을 입양시킬 때도 희망가정에 직원을 서너 차례 보내 가정환경과 주변 여론까지 꼼꼼히 조사시킨다. 직원들의 보고에 의문이 가면 직접 찾아 가기도 했다. 입양하는 날은 양부모에게 한두 시간씩 그동안 경험을 들려주며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하도록 배려해 달라"고 당부하곤 했다. 이 때문에 애리원에서 입양해 간 어린이는 모두 양부모들과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상담원 김현지(25.여)씨는 "원장님이 '말썽꾸러기들도 절대로 큰소리로 나무라지 말고 타일러라'고 하는 바람에 아이들을 지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주 원장은 지금까지 2500여 명의 불우아동들을 사회 각 분야로 배출했고, 640명을 부모품으로 돌려보냈다. 국내 입양기관으로 지정돼 760여 명을 입양시키기도 했다. 그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2000년)과 국민포장(2003년)을 받기도 했다. 애리원 출신의 목사.사회복지사 등 10여 명이 주 원장을 뜻을 이어가고 있다.

주 원장은 2003년 9월 15억여원대에 이르는 복지시설과 부지를 법인에 맡겼고, 평소의 유언에 따라 시신도 부산 고신의료원에 기증했다.

애리원 서상진(73) 사무국장은 "아이들 외엔 아무런 욕심도 없이 모든 것을 지역사회에 주고 가셨다"고 말했다. 빈소는 마산 삼성병원, 발인은 1일 오전 11시 마산 중부교회.055-246-9985.

마산=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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