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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바스켓 방식 검토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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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중국 정부가 오랫동안 뜸 들이던 위안화 절하를 전격 발표하면서 새로이 채택한 환율제도는 바스켓 방식이다. 중국 정부의 발표가 있자마자 중국처럼 미 달러화에 환율을 고정해 오던 말레이시아도 바스켓 방식으로 전환했다. 그동안 바스켓 방식을 운용해 오던 싱가포르는 자신의 환율시스템이 앞으로 동아시아국가들에 더 광범위하게 채택돼야 할 모형(template)이라며 자부심에 차 있다.

왜 갑자기 바스켓 방식이 각광받는가.

바스켓 방식은 주요 교역상대국 통화에 일정한 가중치를 둬서 매일의 환율을 결정하는 제도이다. 자유변동환율제와 가장 큰 차이는 외환시장이 아니라 해당국 정부가 환율 결정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정부가 환율을 결정할 때 외환시장 흐름을 살핀다. 그러나 통화가중치나 일일변동폭 등은 대외비이다. 시장참가자들이 이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외환당국이 해당 수치들을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도 1980년대 초부터 90년대 초까지 10여 년간에 걸쳐 바스켓 방식을 운용했었다. 그러나 무역흑자가 쌓이면서 미국이 '환율조작국'이라는 누명을 씌우며 압력을 넣자 시장평균환율제도로 이행한 뒤 97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자유변동환율제를 채택했다.

많은 시장주의자가 마치 자유변동환율제가 가장 효율적인 제도인 양 내세우고 있지만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확립된 것은 하나도 없다. 제도마다 장단점이 있고 각자 처한 여건에 알맞은 제도를 찾아야 할 뿐이다.

필자는 현재 한국경제가 처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바스켓 방식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필요도 있고 전략적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자유변동환율제하에서는 국내경제의 필요에 맞는 환율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개입할 때 비용이 대단히 많이 든다. 정부가 외환시장에서 통화를 사거나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달러가 강세로 돌아섰기 망정이지 계속 달러 약세가 진행됐다면 우리 통화당국은 그동안의 개입으로 인해 상당히 큰 손실을 입었을 것이다.

반면 바스켓 방식에서는 구태여 돈을 들여 환율을 조정할 필요가 없다. 정부가 고시하면 된다. 물론 고시환율이 시장 흐름과 크게 다를 경우 투기가 벌어질 여지가 있다. 그렇지만 시장 흐름을 잘 읽고 투기 대비책을 잘 세운다면 훨씬 경제적인 제도이다.

필자는 금융위기 이후에 외환시장 규제를 더 강화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기가 온 데에는 우리의 잘못도 있었지만 국제금융시장의 근본적인 불안정도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체제하에서 정부는 '우리 잘못론'에만 입각해 경제 개혁을 하면서 외환시장을 더 자유화시켰다. 결과적으로 환율운용에 비용은 대단히 많이 들이면서 외환시장의 큰손인 국제금융기관들 눈치를 더 많이 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바스켓 방식으로의 전환은 국가 전략 차원에서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90년대에 바스켓 방식을 포기했을 때에는 중국이 전략적 변수가 아니었다. 미국.일본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했다. 두 나라가 자유변동환율제를 택하고 한국도 경제성장에 따라 그 길로 쫓아 오라고 할 때 거부할 명분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경제가 우리 경제운용에 중요한 변수로 등장했다. 한국은 선진국인 일본.미국과 후진국인 중국 사이에 끼어 있는 나라로서 양쪽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를 잘 흡수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특히 중국이 바스켓 방식으로 이동하면서 위안화의 조그마한 움직임이 동아시아 지역의 환율을 출렁이게 할 가능성도 더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가 시장 움직임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환율제도가 바람직한 것 같다. 거대 교역상대국인 중국이 바스켓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작은 이웃나라가 같은 방식을 채택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혹자는 자유변동환율제의 포기는 과거 후진 경제체제로 역행하는 것이라고 우려할지 모른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바스켓 방식으로 당당히 선진국이 됐고 국제금융센터로 자리잡고 있다. 자유변동환율제에 대해 확립된 사실이 하나 있다면 환투기하려는 세력들에게 가장 편리한 제도라는 것뿐이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학 교수.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