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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도청 테이프 후폭풍] 도청 녹취록 조작의혹 증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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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불법 도청 테이프와 이를 토대로 작성된 녹취록 등의 일부 내용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MBC 등 언론들이 앞다퉈 "안기부 내부 보고용으로 보인다"며 보도한 테이프 녹취록 요약본에서 일부 내용이 누락돼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녹취록 요약본에 삼성에서 돈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검찰 간부 3명도 실존 인물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안기부→불법 도청 조직 미림팀장 공운영씨→재미동포 박인회씨→MBC 등 도청 자료가 넘겨지는 과정에서 조작이 있었는지를 밝혀내는 것도 검찰 수사의 핵심 사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강훈 변호사는 "녹취록 내용이 특정 정치세력에 너무 불리해 형평성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며 "검찰이 조작 여부를 규명해야 국민적 의혹이 제대로 풀릴 수 있다"고 말했다.

◆ "누군가 일부 내용 고의로 누락"=MBC 등은 최근 안기부가 1997년 9월 9일자로 작성한 녹취록 요약본을 인용해 "이회창 후보가 홍석현 사장에게 삼성의 기아자동차 인수 지원 의사를 밝히면서 '당 정책위에 검토토록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언론이 근거로 제시한 녹취록 요약본에는 홍석현 주미 대사와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화제로 나눈 얘기가 제외돼 있었다.

이 누락된 부분 다음에 문제의 '당 정책위에 검토토록 하겠다'는 내용이 언급돼 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기아차에 대한 지원 약속을 DJ가 했는데 이회창씨가 한 것으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는 녹취록 요약본 가운데 DJ와 관련된 내용을 누군가 고의로 뺀 탓에 빚어진 일로 해석된다. 이 때문에 이번에 언론에 자료를 넘겨준 박인회씨 등 특정 세력이 고의로 도청자료를 조작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이와 관련, DJ 측은 "기아차 인수지원 보도는 사실무근이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법에 어긋난 일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99년 삼성그룹을 상대로 협박했던 박씨가 당시 집권했던 국민의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일부 내용을 누락시켰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박씨는 99년 박지원씨(당시 문화부 장관)에게 도청 자료를 갖고 접근했었다는 점에서 이런 해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 "실제론 없는 검찰 간부 거론"=녹취록 요약본에는 삼성그룹 측이 전 법무부 장관 K씨 등 전.현직 검찰 간부 10명에게 금품을 전달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이 중 K씨, S씨 등 3명은 전.현직 검찰 간부 중에 없다. 이번 녹취록 요약본이 특정인을 보호하기 위해 조작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 "표적 공개 의혹"=언론이 공개한 녹취록 요약본에는 삼성그룹 측이 이회창 후보에게 전달했거나, 전달하려 한 돈의 액수가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다.

하지만 야당 후보였던 DJ에게 준 돈의 액수는 전혀 알 수 없도록 돼 있다. 단순히 DJ 측이 호의에 대한 감사용으로 편지를 보내왔다는 게 전부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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