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72승 54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54승 72패 60무승부-. 어느 권투선수의 전적이 아니다. 미국과 일본의 기술경쟁 스코어. 미국 쪽에서 채점하면 72승 54패다.
일본 통산성 공업기술원은 최근일본의 기술전문가 6백 명을 대상으로 일본의 기술수준을 국제적으로 비교해 본 일이 있었다.
유럽과 일본과의 비교에선 일본의 우세가 분명하다. 63장 30패 72무승부.
이런 스코어는 요즘 일본에서 일고 있는 자국기술 회의론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난달 일본의 한 유명 전자회사가 미국 IBM사의 기술을 훔친 사건이후 어련 자생의 소리가 높다. 그 점에선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도 없지 않다.
거기 나타난 각국 기술의 특징도 있었다. 일본이 제품의 생산관리, 대량생산, 자동화에 우위를 점한 반면 미국은 설계, 선단기술개발 등에 앞서고 있다.
미국은 창조적 기술에, 일본은 응용기술에 앞서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이 이노베이션(innovation)쪽이라면 일본은 임프루브먼트(improvement)쪽이다.
트랜지스터, 자동차, VTR, IC 같은 것은 모두 미국의 발명품이지만 그 기술을 도입,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발전시켜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건 일본이다.
반도체산업도 그렇다. 그 기초 기술은 이미 50년대에 미국에서 개발되었다. 일본은 60년대 후반 그 기술을 도입, IC양산에 들어갔다. 그때 일본이 지불한 대외 기술료는 매상의 10%전후. 그러나 지금 일본전기는 1%만 물고있다.
15년의 기본특허 유효기간이 경과한 데다가 그 동안 개발한 응용·생산기술로 일본기업은 외국 메이커와 크로스 라이선스(기술교환)계약을 맺고 상호기술료 지불을 면제하고 있다.
로보트의 경우도 마찬가지. 설치대수 면에서 일본은 단연「로보트 왕국」이다. 그러나 일본은 기본기술인 CAD/CAM (컴퓨터를 이용한 설계, 생산)은 거의 미국에서 수입한다.
그 때문에 일본은 미국에서 로보트 기술정보수집에 광분하고 있다. 벤처 비즈니스는 물론 대학생이 만든 것까지 모아들이는 대 혈안이다.
원자력도 지금은 1백% 국산로 라고 큰소리지만 신형 경수로나 고속 증식로는 모두 미국 대 메이커와의 합작이다.
광통신시대의 총아 광섬유도 기본 특허는 미국회사의 것. 항공기도 군용기의 중추부분인 관성항법강치, 사격관제장치 등 컴퓨터기술은 미국기술을 따를 수 없다.
산업스파이사건은 그런 실상을 일본인들에게 주지시긴 계기가 되었다. 그건 전화위복일 수 있다.
독창기술개발엔 아직도 일본인은 미성년에 지나지 않는다. 돈으로 기술을 사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일본이다. 스스로 기술 개발에 나서지 않으면 기술전쟁에서 결국은 이길 수 없다는 뒤늦은 자각도 한다. 우리는 더더구나 미일 기술전쟁을 그저 관전만 하고 있을 처지가 아님을 자각해야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