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막은 모래성 허물며 길이 아닌 곳으로는 가지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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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내가 국민학교 1학년인가 2학년때라고 기억란다. 할아버지께서 원산 근처에있는 석왕사라는 곳에 자그마한 초가집을 하나 사셨다. 여름방학만 되면 식구들이 몽땅 그리로 우르르 몰려가서 한여름을 지내곤 했던 곳이다.
아버지 형제분 아홉분과 사촌들까지 한집에 살고있던 터라 식구들이 몇십명이었다. 그 중에서 나는 동갑짜리 사촌 남동생과 단짝으로 늘 붙어 다녔다.
석왕사의 약수물을 마시면 설탕 없는사이다 같았고 그 물로 밥을지으면 파르스름하니 찰밥같이 맛이 있었다.
마당이나 길가의 흙은 하얀모래로 깔렸는데 새벽녘에 나가보면 호랑이 발자국을 봤다는 사람이 있을 지경으로 소나무가 우거진 곳이었다.
남동생하고 나는 집앞 골목의 흙을 긁어모아 한길을 가로막듯이 담장을 만들었다.
한 두치 정도의 높이었지만.그리고「들아서 가시오」 라고 쓴 종이 쪽지를 들고서 있었다.길 양옆은 바위 둘이었고그위에는 나무들이 많았기 때문에 들위로 기어올라가는 꼴을 보려고 우리들이꾸민 흉계였다.
마침내 어느 젊은 남자 한사람이 국방색 모자룰 쓰고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때는 일제시대라 대부분의 청년들은그런 모자를 썼던 것이다. 그는길을 가로막고 서있는 내 앞에 와서 종이위의 글씨를 눈여겨 보더니 일부러 모래로 쌓은 성을두번이나 밟아뭉개는게 아닌가.
나는 큰소리로 종이를 내흔들며 이것이 안보이느냐고 소리를 쳤고 남동생은 그 청년의 엉덩이를 철썩철썩 때리며 나쁜 사람이라고 말했다.
『얘들아, 사람이라면 길 위로 다녀야 한단다. 길이 아닌 곳으로 가면 못써. 도대체 너희들은 어느학교 학생들이지?』
그의 위엄있는 말에 우리는 금새 풀이 죽어 기어들어 갈듯한 목소리로 학교·이름을 댔다. 그러자 그청년은 뭣이 재미있는지 조금 아까의 엄한 표정과는 딴판으로 빙그레니 웃더니 자기 손으로 그 모래성을 다 허물고 난 뒤에 전천히 사라졌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학기가 뒤어 아침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이 새로 부임해 오신 선생님 한분을 학생들에게 소개 시 켰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일까. 바로 석왕사에서 우리들에게 엉덩이를 얻어 맞았던그 청년이 아닌가.
어쩐지 우리가 학교 이름을 말할 때 빙그레 옷더라니 내가 나이 들어 무슨일을 결단할 사건이 생길때마다 『길이 아닌 곳으로는 가지 말라』던 그 선생님 말씀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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