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한 때 … " 대미 외교 차질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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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주미대사의 사의 표명 소식이 알려진 25일 워싱턴 주재 한국 대사관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하나는 "여론몰이에 내몰린 사의 표명"이라는 아쉬움이다. 대사관 직원들은 1997년 대선 당시 홍 대사의 처신이 잘못됐다는 점을 들어 홍 대사 교체를 정면으로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홍 대사의 자질과 열성을 들어 강한 아쉬움을 표시했다.

한 간부는 "홍 대사 부임을 놓고 처음엔 비아냥거리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운을 뗀 뒤 "그러나 지난 5개월 남짓한 동안 홍 대사는 정말 의욕적으로 열심히 일하면서 대사관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홍 대사를 가까이에서 보좌한 직원들은 특히 "홍 대사가 다양한 이력을 배경으로 정무 분야뿐 아니라 경제.언론.문화.사회.과학.보건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한 외교 활동을 벌였다"고 회고했다.

또 하나의 반응은 대미 외교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6자회담이 열리는 중요한 시기에 홍 대사가 물러남으로써 외교적으로 적지않은 혼선과 손실을 감수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대사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대사가 주재국 조야 인사를 접촉하는 수준과, 대사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대화의 수준을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주미대사는 국무.국방장관을 비롯한 장관급 인사와 만나거나 이들이 주최하는 연회 등에 초청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의회와 민간 분야 최고위층과도 교류하는 자리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제4차 6자회담이 막 시작된, 외교적으로 극히 민감한 시기에 대미 외교의 일선 사령탑이 바뀐다면 대미 외교의 전력 약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6자회담 중 주미 대사관은 미국 정부의 반응을 정확히 파악해 현장의 한국 협상팀에 전달하고, 한국의 입장이 정리되면 이를 놓고 미국 정부와 조율을 벌이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이런 시기에 주미 외교관의 대표인 대사가 경질된다면 크고 작은 외교적 손실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홍 대사는 후임 대사 임명과 상관없이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대리 대사에게 업무를 인계한 뒤 미국 생활을 정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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