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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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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고속도로나 다리건설과는 달리 토목·건축·궤도·차량·전기·신호·통신 등 거의 모든 분야의 기술이 총 망라 되어 이루어지는 지하철공사는 어떤 다른 공사보다 고도의 기능을 갖춘 기술진을 필요로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경험축척이 요구된다.

<기술>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2, 3, 4호선 공사구간 91.5km에서 일하고있는 기술자 l천여명 가운데 지하철공사경험이 있거나 탁월한 기술자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서울시의 자체분석이다.
10년전에 이루어진 1호선과2호선 완공구간에 참여했던 기술진수는 4백여명이었으나 공직에 있던 기술자들이 이젠 다른 직책을 맡아 대부분 분야가 바뀌었고 시공회사에 소속되었던 사람들도 상망수가 벌이와 근무조건이 좋은 해외건설현장 등지로 빠져나갔다.
더구나 l호선 건설 때는 9·5km구간을 8개회사가 11개공구로 나누어 맡았으나 지금은 91·5km, 84개공구를 26개회사가 분담, 힘겹게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l호선때는 외국기술진이 맡았던 차량·전기분야까지 우리 손으로 해결해야하는 등 어려움이 가중됐다.
한국건업 강남현장의 임모과강(36)은 『1개회사가 평균3·2공구씩을 맡아 공사실계시공을 번갈아 하면서 그것도 정책적으로 결정한 공기에 맞추다보면 안전대책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한국건업의 경우 부족한 기술진의 악조건을 무릅쓰고 78∼82년 사이 20·7km의 공사를 11차례에 걸쳐 분할 발주 받아 지금까지 큰 사고없이 이루어낸 것은 기적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1호선 당시의 기술진이 2, 3, 4호선 공사를 계속맡고, 그동안의 기술발전이 도움을 준다고 하더라도 벅찬 일을 여러구간 동시착공으로 고급인력을 분산시킨 데다 경험·기술축적조차 없는 상황에서 공사를 강행하게되어 안전사고의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공사에 참여하고있는 회사선정에도 문제가 있다.
서울시는 79년 지하철완공을 앞당기기 위해 건설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회사를 모두 받아들여 아파트건립 외에는 건설공사실적이 거의 없는 주택건축업체들까지 대거 참여시켰다. 현재 2, 3, 4호선 공사를 맡고있는 26개회사 중 6개회사가 주택건설업체들이다.
지하철공사는 1호선완공 후 4년의 공백이 있었듯이 84년말까지 현재 건설 중인 2, 3, 4호선이 모두 완공되면 언제 또 다시 5호선공사가 시작될지 모르기 때문에 아파트건설공사 등과는 달리 일정기간 안에 끝나고 마는 단일공사라는 성격을 띠고있다.
이 때문에 많은 회사들은 기술자들을 「회사직원」으로 보다는「일시고용」하는 스타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고 완벽한 공사를 하기 위한 경쟁보다는 경비절감을 앞세워 기술자들에 대한 대우나 신분보장 등을 제대로 해주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유능한 기술자들이 지하철공사장을 기피하는 이유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김인직 서울시건설관리국장은『지하철 건설 시공회사들이 실리도 적은데다 조그만 사건에도 직장을 잃거나 형사책임까지 져야하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어 높은 수준의 기술진을 확보하는데 애로를 겪고있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장비>
장비도 기술수준이나 비슷하다. 지하철공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토목공사에 꼭 필요한 T4(쇠기둥을 박는데 쓰이는 기계)는 전구간에 걸쳐 18개밖에 없어 공구마다 돌려가며 쓰는 실정. 대당 가격이 5억여원이나 돼 회사마다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크레인은 공구마다 평균2대씩 배치돼있지만 작업량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하고 특히 강재나·복공판 등의 자재는 턱없이 모자라 일본에서는 공사과정에서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구조물로 두어 주변도로 등을 더욱 안전하게 하고있는 반면 우리의 경우는 완공 후 모두 빼내 다른 곳에 다시 사용하는 실정.
이 때문에 지반이 내려앉거나 인근건물에 금이가는 등의 피해가 속출해 3, 4호선의 경우 80년 착공 후 지금까지 모두 1백75건에 1억8천5백6만7천원의 보상·보수비가 들었다.

<안전대책>
기술사 김순근씨(연대·성대토목공학과 초빙강사)는 지하철공사장의 사고가 원천적으로 우리나라의 다른 토목건축공사와 마찬가지로▲토목설계의 안전한 시공지침이 없고▲기술력이 대졸 아니면 막노동인부로 나누어져있어 기능장 역할을 하는 층이 형성되어 있지 않으며 ▲산학협동체제 등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씨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독의 DIN, 영국의 BS코드제도처럼 법적으로 안전시공을 할 수 있는 지침이 마련되어야하며 기능대학 등을 통한 기능강의 양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또 건설업체마다 시공설계·공법개량연구 등을 전담하는 기구 등을 필수적으로 갖추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최근 서울시의 시영아파트 건설에서와 같이 설계·시공을 일괄하여 맡도록하는 턴키베이스의 공사발주가 이루어지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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