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북이 함께 쓰자, 소설이든 뭐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 백두산 기슭 베개봉호텔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남측 소설가 황석영(왼쪽)씨와 북측 소설가 홍석중씨. [백두산=공동취재단]

남측의 작가 황석영(62)과 북측의 작가 홍석중(64). 1989년 황석영씨가 방북해 둘이 만난 뒤로 둘의 우정은 16년째 이어지고 있다. 20일부터 25일까지 평양.백두산. 묘향산 등에서 열린 민족문학작가대회에서 만난 둘은 오래된 친구처럼 내내 함께 다니며 숱한 수다(!)를 떨었다. 나이는 홍석중씨가 두살 많지만 등단은 황석영씨가 빨라 둘은 말을 놓는다. 여러 차례 호탕한 웃음과 허물 없는 대화가 오가더니 끝내 결의했다. 공동 창작. 남과 북의 대표적 작가 둘이 "서간문이든 수필이든 소설이든 장르에 구애받지 말고 둘이 함께 글을 쓰자"고 다짐한 것이다. 22일 오후 백두산 기슭 베개봉호텔에서 이뤄진 둘의 대화를 옮긴다.

▶황석영=지난해 홍석중씨가 남쪽 출판사 창비가 주관하는 만해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통쾌했다. 그것은 문학의 힘이 분단의 높은 벽을 뚫은 일대 사변(사건)이었다. 만해문학상 수상작 '황진이'를 보면서 우리 둘이 서로 떨어져 있어도 생각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홍석중='황진이'를 내고, 또 이렇게 황형을 만나 소감을 듣고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 어제 평양에서 열린 민족작가회의가 바로 그런 것이지만 우리는 절대 분리해서 살지 못한다. '임꺽정'(홍석중의 조부 홍명희의 대하소설) 이 '장길산'(황석영의 대하소설)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나만큼 '장길산'을 많이 읽은 독자도 없을 것이다. 머리맡에 늘 꽂아두고 순서없이 꺼내 읽는다. 그런데 '장길산'과 내 소설이 어딘지 모르게 닮은 데가 있다. 그러니까 서로 보완하는 것이다. 우리 문학의 뿌리는 같다.

▶황석영='장길산'은 이북 지도를 펼쳐놓고 조선시대 의금부 공초 기록을 뒤져가며 쓴 것이다. 내가 작품 무대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면 그렇게 쓰지 못했을 것이다.

▶홍석중=우리 민족문학은 우물 안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물 안에 가만히 있으면서 밖에서 뭔가 해주기를 바라면 되는 일이 없다. 황형은 그동안 어려운 선구자의 길을 걸어왔는데 부탁이 있다. 꼭 남쪽만 생각하지 말고 북과 남을 같이 끌고 가는 노릇을 해줬으면 한다.

▶황석영=16년 전 나 혼자 북에 와 뒷골목 다니듯이 다녔는데 지금 남쪽 문인 98명이 비행기를 타고 평양에 왔다. 이제 남북 문학이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인위적 노력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같은 말을 써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 말을 누가, 무엇이 갈라 놓을 수 있는가. 우리 문학은 하나다. 홍석중형과의 귀한 인연도 바로 그런 소통이다.

▶홍석중=16년 전에 약속했던 것이지만 우리 둘이 같이 작품을 쓰자. 짧은 것이든 긴 것이든 가리지 말자. 이젠 때가 되었다. 우리는 동시대를 살았고 아픔도 같이 느껴왔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늘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우리의 인간적이고 문학적인 친교를 이제 총화의 차원으로 갖고 가야 한다. 우리 둘이 같이 쓰는 것이 우리 문학이 하나되는 것이다. 편지글도 좋고 대담도 좋다. 장르를 구분하지 말자.

▶황석영=참 좋은 생각이다. 추진하자. 우리 둘이 소설을 번갈아 이어가며 쓸 수도 있겠다. 우리 후배들이 남북을 오가면서 서로의 원고를 전해주고. 정말 멋진 일이다.

▶홍석중=황형이 16년 전 북에 왔다가 '북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썼다. 그만큼 분단의 벽이 높았던 것이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 남과 북을 서로를 샅샅이 알고 있다. 문학과 사회 생활은 서로 차이가 있지만, 문학은 문학이고 작가는 작가다. 창작 방식은 차이가 있을 수 없다.

▶황석영=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자기 작품을 제품으로 팔기 위해 쓰는 작가는 거의 없다. 작가의 본질은 같다. 홍석중과 황석영은 같다. 우리 민족에게는 천혜의 낙관주의가 있다. 우리 민족이 통일을 이룩하는데 문학의 역할이 분명 있다.

▶홍석중=요즘 책 나오는 것 보면 분단을 못 느낀다. 북에서 '황진이'가 나온 지 한 달 반만에 남쪽 평론가로부터 연락이 올 정도다(그의 대표작 '황진이'는 최근 남측 출판사가 저작권 계약을 마치고 정식으로 수입.판매하고 있다).

평양.백두산=공동취재단.손민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