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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옥씨<양산 장안중 교장>
▲26년 진주 산▲47년 육사 졸▲54년 육본수송감실 차감▲62년 부산 시장▲63년 준장 예편▲66년 서울시장▲71년 내무장관▲73년 행정비상임 위원▲미 디킨즈대 명예 법학박사(69년)▲금성충무 무공훈장·미 공로훈장 등 다수. 저서 「푸른 유산」.
서울시장과 내무부 장관까지 지내다 낙향하여 한 시골 중학교 교장이 된 김현옥씨(57·경남 양산군 장안중 교장).
귀거래사를 읊은 지 만 1년이 지난 그는 이제 「불도저 시장」이니 「돌격 장관」의 이미지를 말끔히 씻은 한 평범한 지역주민이 됐다.
『지난 한해동안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 무엇보다 무한한 가능성과 보람에 찬 나날이 더없이 행복합니다』는 첫 마디에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동안 떠돌던 「제스처나 딴 속셈으로 교장직을 맡았다」는 인상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시골학교에 뼈를 묻기로 한 당초 결심이 한해가 가는 사이 더욱 굳어졌지요.
이젠 신문사 같은데서 날 찾아 올 일이 없는 줄로 알고 있는데…』
노타이 차림의 긴 팔 셔츠에 흰 바지·운동화 차림으로 기자를 맞은 김 교장은 그 자신 더 이상 세인의 주목을 받을 만한 인물이 아님을 강조했다.
『처음 이곳에 내려 왔을 때는 주민들도 몇 달하다 싫증이 나면 돌아가겠지 하는 눈치였습니다만 지금은 소박한 진심을 조금은 이해하려는 것 같아요.』
그것은 김 교장이 단지 1년 넘게 이곳에 눌러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부임한 후 학교의 면모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
나무도 풀도 없던 교정에는 8천여 그루의 나무와 수많은 화분으로 단장 됐고 주변의 잔디가 깔린 연못에는 인공폭포 아래서 팔뚝만한 잉어가 노닌다.
김현옥 작사 길옥윤 작곡의 교가도 만들어 학생들은 물론 주민들까지 따라 부를 만큼 됐다. 『외형적인 변화 만큼 학생과 교사사이의 관계도 많이 달라지고 있어요. 교사들에게는 늘 생계에 쫓기는 부모들이 해주지 못하는 따뜻한 관심과 배려로 학생들에게 베풀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부임직후 이 학교에서 자의든 타의든 퇴학이라는 말을 없앴다.
『학교가 교육을 포기하면 그 아이들을 누가 돌봅니까. 교사가 끝까지 책임져야지요. 안되면 교장인 내가 직접 맡고 있어요. 뜨거운 마음끼리의 접촉이 이루어지면 비뚤어진 아이도 얼마든지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교육 철학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담담하게 회상조로 흐르던 말투에 높은 억양이 섞였다. 천 4백 명의 남녀학생과 교장을 비롯한 32명의 교직원들은 곧잘 어울려 야구나 축구 경기를 벌인다고 했다. 김 교장의 야구 포지션은 외야수. 축구도 남녀혼성 팀을 구성하도록 하여 구별을 없애고 선의의 경쟁을 치르도록 요구하고 있다.
『보십시오. 뛰는 아이들이 얼마나 밝습니까. 어쩌다 서울에도 가보지만 전국에서 우리 학교학생들 만큼 밝은 아이들이 없을 겁니다』 넘쳐 흐르는 애정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이 그의 표정은 열정으로 들떠있었다.
1학년은 아무 것도 모르는 개구쟁이, 2학년은 무책임한 유랑자 집단인데 3학년이 되면 그만 의젓해져 주인 노릇을 하는 조화가 바로 교육의 보람이 아니겠느냐』는 김 교장은 학생들의 성장하는 모습이 그렇게 기특하게 여겨질 수 없다고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내 경험에서 보면 어학은 중학교 때 길들이지 않으면 힘들어요. 그래서 학년마다 영어 교과서는 무조건 모두 외도록 가르치지요.』 불도저 방식의 잔재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나름대로 뚜렷한 목표가 있어 큰 성과가 기대되었다.
80 노모 때문에 서울살림을 모두 옮겨오지 못해 줄곧 부산 송정동의 21평 짜리 시영아파트를 세내 자취해 오고 있는 김 교장.
아침은 율무죽으로 때우고 점심은 학교식당에서 김치·국 한 그릇의 5백원 짜리 백반. 하루 종일 교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저녁 무렵 몹시 시장해져 7시쯤 집에 돌아가는 대로 손수 밥 짓는 일부터 한다고 했다.
『다른 잡념은 생길 틈도 없지요. 지금 이대로 만족하고 이렇게 여생을 살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묻지도 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 두었으면 좋겠어요. 교사들의 잡무가 줄었다고 하지만 무슨 보고니 연수회들이 그리 많은지…. 교육은 선생님들에게 맡겨 내버려두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다른 일도 다 마찬가지지요.』
이야기는 시종 교육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세상에 관한 관심은 학교일 못지 않은 것 같았다. 『벼슬이란 원래 그런 거지요. 눈앞밖에는 안 보입니다. 나라가 잘되려면 온 국민이 눈을 크게 뜨고 깨어나야 합니다.』
기자와 함께 교정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던 김 교장은 지나가며 인사를 꾸뻑하는 한 학생을 불려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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