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제 1세대」로 세대 교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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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사편찬위원회가 대폭 개편 됐다.
정부는 지난 7일 국편위원장에 이현종 편사실장을 승진 발령하는 한편 6월 30일로 임기 만료된 15명 정원의 위원 중 8명을 새로 위촉했다.
최영희 박사는 10년 근속의 국편위원장직을 떠났다.
새로 국편위원에 위촉된 학자는 김정배(고려대·고대사) 변태섭(서울대·중세사) 유원동(숙명여대·근세사) 최정호(연세대·근대사) 이현종(국편·근대사) 손보기(연세대·고고학) 민석홍(서울대·서양사) 천관자(언론인·고대사)씨.
재 위촉된 위원은 김철준(서울대·고대사) 이광린(서강대·근대사) 김원룡(서울대·고고학) 고병익(전 서울대·동양사) 전해종(서강대·동양사)씨 등이다.
이번 개편에선 초창기부터 연임해운 이병도·백낙준·유홍렬·이선근·한우근·조기준씨 등 65세 이상의 학자들이 탈락되고 해방 후 역사학을 전공한 「해방 제 1세대」들이 대거 참여, 세대 교체를 이룬 점이 주목된다.
이는 지난번 학·예술원 개편에서 비롯된 일련의 문화담당 기관 개편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계에선 이번 대폭 개편을 계기로 국편의 체질 개선과 함께 한층 활성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개편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사정이나 여건으로 보아 큰 변화는 오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는 학자들도 있다.
위원회는 보통 국편 사업의 시작과 마무리를 위해 연초·연말 2번 열리며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당 전문위원이 모여 자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 면에서 신임 이현종 위원장(52)의 역할이 크게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1956년 국편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편사관·편사실장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편의 일은 학계와의 긴밀한 유대 속에서만 가능합니다. 항상 유기적 연관 속에서 한국사 연구가 한층 활기를 띠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는 『국편의 기본 업무인 국사 편찬과 사료의 수집·정리·보급뿐만 아니라 이를 토대로 민족사를 체계화함으로써 국민의 역사 의식을 높여 줌은 물론, 역사에 대한 사랑의 계기가 되도록 일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고대사 문제 등 국사학계의 쟁점을 학술적으로 정리한 자료집을 펴내는 한편, 연구 기금으로 이러한 쟁점들을 연구시키겠다면서, 특히 「한국사론」을 통해서 깊이 있는 연구의 지상토론장이 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해방 후 국사관으로 출범한 국편은 그 동안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방대한 사료 간행과 조선시대 분류사 등을 정리해 왔다.
특히 「한국사」 25권의 완간은 내용상 문제점도 없지 않으나 국편의 대표적인 업적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국편은 그 동안 학계에 많은 학자들을 배출했다. 계속되는 연구 요원의 학계 유출은 국편의 연구 기능을 약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연구담당자의 보강과 유인 체제의 확립은 매우 시급한 과제로 보인다.
또한 학자들은 국편이 기본 사료 정리 사업을 보다 강화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다른 기관의 유사한 사업이 상대적으로 약화됨에 따라 국편이 현재 국사 체계화의 유일한 핵심 연구 기관인 점과 아울러 방대한 사료 정리는 결코 개인으로서는 손댈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기왕에 나온 사료집 중엔 실적 중심인 점도 보여 배포량이 극히 한정되어 이용하기가 힘들다는 점을 지적하는 학자들도 있다.
특히 국편이 내실 있게 본연의 기본 사업을 강화하려면 더욱 연구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일이라고 일부 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상태에선 역사를 기술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성급한 「현대사」 서술 같은 것은 오히려 국편의 보다 중요한 기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고.
아무튼 이번 국편의 대폭 개편과 이 위원장 체제의 출범이 국사의 체계화에 어떤 기운을 몰고 올지는 지켜 볼 일이다.<이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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