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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포럼

홍준표 의원에게 묻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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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아무리 애를 써도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지방을 돌아다니며 여전히 주택소유 제한 특별조치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말썽 많은 재외동포법도 다시 발의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일부 계층의 끊임없는 박수 소리가 그를 지치지 않게 하는 듯하다.

그가 의지하고 있는 여론의 박수는 내가 보고 있는 여론의 깊은 침묵과 엄청난 간극을 보이고 있다. 어느 쪽 여론의 덩치가 더 큰가는 보기 나름이니 답변할 성격이 못 된다. 여론조사를 해봐야 의미가 없다. 그의 두 가지 제안에 동조하는 사람은 애국자이거나 삶에 찌든 서민들로 분류되고 할 말, 못할 말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입장에 선다. 반대하는 측은 매국노나 가진자로 몰릴까봐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것이다.

과거 검찰에서 법을 집행하고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최고급 정보를 다뤄 오면서 보수적 인물로 처신해 왔던 홍준표 의원이 잇따라 급진 좌파적 정책을 들고 나온 저간의 사정이 무척 궁금하다. 두 가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도 그의 사상의 굴곡과 철학의 궤적을 시시콜콜 캐묻고 따져보아야 하나 자칫 그 의도가 오해되기 십상이다.

상황이 어떻든 그는 우리 국민 사이에 깔려 있는 정서적 분위기에 적당히 편승하고 이를 정치화하려는 욕심을 키워가는 것 같다. 정치인이 국민의 곁으로 다가가면서 보여주는 일대 변신은 긴 안목을 요구한다. 자칫 잘못하면 국민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생활을 더 어렵게 한다. 국민은 생활 현실에 파묻혀 있으므로 앞을 보기 어렵다. 그런 국민에게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고 눈 앞에 벌어진 일만을 강조하는 정치인은 궤멸한다. 문제가 생기면 정치인들은 어디론가 도망가고 없다. 국민만 괴로울 뿐이다. 그 예를 들라면 쉴새없이 나열할 수 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은 서민들의 갈채 속에 과외 전면금지를 단행했다. 그러나 두더지처럼 숨어서 과외 하는 일이 늘어나자 오히려 위험 프리미엄이 붙고 과외비는 폭등했다. 서민들이 더 괴로웠다.

90년 여야 의원들이 기업의 영업용 부속토지에 적용하는 재산세 누진세율을 한꺼번에 최고 17배나 올렸다. 투기를 잡겠다는 일념에서였다. 그런데 웃기는 일이 벌어졌다. 의원들이 두 달 뒤에 허겁지겁 관련 법을 개정해 세율을 내려야 했다. 세금 인상분이 각종 제품과 서비스에 전가돼 물가가 들썩거리고 서민 가계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책 실패의 체험은 늘 풍화돼 버리는 속성을 갖는다. 3년 전에도 의원들이 힘없는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상가임대차보호법과 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을 개정했으나 오히려 전세금 파동이 일어나 어안이 벙벙해진 일을 겪었다. 그때의 정치인들은 지금도 고개를 들지 못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걸고 쌀시장을 지키겠다"고 선언한 이후 한국은 얼마나 많은 학습 비용을 지불했는가 기억해야 한다. 여론에 몰린 무식한 공약의 대가였다. 이럴 때 우리들은 개명된 국민이 먼저냐, 안목 있는 지도자가 먼저냐 하는 의문을 던진다. 그러나 그것은 상황의 함수다.

홍준표 의원은 진실과 비전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의 두 가지 정책이 대중적 정서에서 떠나 장차 한국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설명할 의무가 있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이고 국제화.세계화된 이 마당에 국제 룰을 지키며 창조성 있는 인재들을 육성해야 하는 현실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돼야 한다. 그의 폭탄성 제안은 현재와 미래를 이어갈 수 있는 적절한 정책인가? 우리들은 이런 글을 경구로 삼는다. "언어의 진부함은 경범죄요, 시각의 진부함은 중범죄다." 그 경구는 홍준표 의원에게도 합당한 것이다. 그가 국민의 수준을 넘지는 못하더라도 그 수준에 맞는 정치인이기를 바란다. 침묵하는 다수의 시선을 느끼지 못하고 그 수준을 낮추기만 한다면 자칫 포퓰리즘의 독재에 빠지기 쉽다. 20년대 미국이 음주로 인한 범죄를 줄이기 위해 금주법을 시행한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아는가. 정치인은 박수 소리를 잘 분석해야 한다.

최철주 월간 NEXT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