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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 백신과 치료제 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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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기니 등의 에볼라 바이러스 질환이 발병자 1만3042명, 사망자 4818명의 대재앙으로 번지고 있다. 이에 대응할 백신은 이미 2003년부터 여러 연구소·제약업체가 개발에 들어갔다. 치료제 개발도 시도 중이다. 하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유효성과 안전성을 인정하고 시판을 승인한 제품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치사율이 높고 전염력이 강한 에볼라 바이러스의 특성상 연구·임상시험이 쉽지 않아서다. 잦은 돌연변이 등 바이러스 고유의 특성상 개발 자체가 지극히 어렵다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질병 퇴치를 위한 인류의 도전은 멈출 수 없다. 인류가 축적해온 과학 지식·기술을 총동원하다시피 하고 있는 에볼라 퇴치 백신·치료제 개발의 최신 동향을 알아본다.

◇백신=올해 에볼라 바이러스 질환이 대유행하자 미 식품의약국(FDA)과 세계보건기구(WHO)는 9월부터 이른바 '패스트 트랙(Fast Track)'을 긴급 가동했다. 복잡하고 긴 시간이 요구되는 신약 개발 절차를 간소화해 이른 시일 안에 개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덕분에 2개의 백신 후보가 3단계로 이뤄진 임상시험의 1단계에 곧바로 들어갔다. ‘cAd3-EBO Z’와 'VSV-EBOV'가 주인공이다. ‘cAd3-ZEBO는 다국적 제약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자회사인 오카이로스와 미 국립알레르기및감염질환연구소(NIAID)가 함께 개발해 'NIAID/GSK 에볼라 백신'으로도 불린다. 침팬지에서 발견한 여러 종류의 바이러스를 유전공학적으로 조작해 특수한 당단백질을 생산하게 함으로써 이로부터 자극받은 인체가 에볼라 바이러스에 면역력을 갖도록 하는 백신이다. 인간에 대한 임상시험이 가능하도록 독성을 줄인 약독화 과정도 거쳤다.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사에 있는 NIAID와 영국의 옥스퍼드대에서 자원자를 대상으로 1단계 임상실험이 진행 중이다. 10월부터는 아프리카 말리로 시험지역을 확대했다.

VSV-EBOV는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에 있는 월터리드 육군연구소에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캐나다 국립미생물연구소와 뉴링크제네틱스라는 벤처업체가 함께 개발하고 있다. 소낭성 구내염 바이러스(VSIV)를 유전공학적으로 변형해 인간 면역체계가 에볼라 바이러스에 반응하도록 촉발하며, 에볼라 바이러스의 DNA 재조합을 방해해 증식을 억제한다. 이를 통해 예방과 치료 효과를 동시에 거둔다. 사실 VSV-EBOV는 노장이다. 에이즈와 인면역바이러스( HIV) 퇴치에 혁혁한 전과를 세운 '역전의 용사'다. ‘트로이의 목마 바이러스’라는 이름으로 에이즈 치료제 개발사에서 명성을 얻었다. 에이즈에 감염된 T세포를 찾아 공격한다. 이를 에볼라에 적용했다. 원숭이 종류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근육 주사 한방으로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성이 생겼다는 보고가 있다. 발열을 비롯한 부작용도 관찰되지 않았다. 이미 감염된 사람에게도 치료제로서 잠재력이 있음이 확인됐다.

연구자들은 VSV-EBOV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백신을 혼합한 '칵테일 백신' 한 방으로 여러 종류의 에볼라 바이러스를 한꺼번에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방법도 찾고 있다. 현재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 중이다. 주사 이외에도 경구 투여하거나 코 안에 몇 방울 떨어뜨려 비강에서 흡수되도록 하는 약물 제제 연구도 병행 중이다. 의료진이 없어도 많은 사람에게 편리하게 백신이 접종되게 하려는 노력이다.

바이오벤처 노바박스는 나노기술을 적용한 에볼라 백신인 'EBOV GP'의 개발이 올 연말 안에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10월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에볼라 콘퍼런스에서 밝혔다. 첨단 기술을 이용한 전임상단계 ‘모델 시험’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인체의 면역기능을 촉발하는 유용한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이 백신은 기니에서 창궐한 종류의 에볼라를 대상으로 한다. 냉장이 필요 없어 대량 공급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러시아 보건부는 최근 트리아조베린이라는 에볼라 백신을 개발했으며 2015년 초에 서아프리카에서 임상시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항바이러스제=항체를 만들어 면역력을 확보해주는 백신 종류는 아니지만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항바이러스제도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제약사 체메릭스가 개발 중인 항바이러스제 브린시도포비르가 가장 유망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1000명 이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 결과 인체에 상부호흡기 감염을 일으키는 아데노바이러스 등에 효과가 상당히 확인된 항바이러스제로 에볼라 바리러스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임상시험 막바지에 해당하는 ‘3상 임상시험’ 중이다. FDA의 승인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약품이다. 이 역시 FDA가 가동 중인 에볼라 질환을 위한 신약 긴급 허가 적용 대상에 올랐다. 상당한 절차를 건너뛰고 급하게 허가를 얻어 환자에게 투여될 전망이다. 에볼라 발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지 6일째 되는 환자에게 투입했지만 4일 뒤 숨졌다. 하지만, 또 다른 환자에게 투여했더니 회복돼 지난 10월22일 에볼라가 완치돼 신체에서 더 이상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일본 도야마화학이 개발 중인 파비피라비르라는 항바이러스제도 유망 제품으로 꼽힌다. 쥐 실험 결과 에볼라 바이러스 질환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T-705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실험 의약품은 독감 바이러스, 황열병 바이러스, 구제역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위해 필요한 ‘RNA 의존 RNA폴리메라제’라는 효소의 작용을 억제함으로써 바이러스의 활동을 막는다.
원래 결핵균의 발육을 억제하는 것은 물론 세균의 유전적 복제를 막아 세균 자체를 박멸하는 데도 효과가 있는 피라진아미드라는 화학적인 핵을 가진 물질이다. 일본 보건당국은 WHO의 요청이 있을 경우 이 항바이러스제를 공급하기로 했다. 에볼라 바이러스 질환이 창궐한 라이베리아에서 '국경없는 의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프랑스 간호사가 파비피라비르를 복용하고 회복된 것으로 지난 10월4일 보고됐다. 물론 아직 이 약품이 에볼라 바이러스 질환을 충분히 치료할 수 있을지를 말해주는 유효성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1건으로선 이 약 때문에 치료가 된 것인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환자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긴급 공수할 생각을 하고 있는 약품이기도 하다.

BCX4430이라는 항바이러스제도 주목받고 있다. 미국 NIAID로부터 개발비를 지원받아 바이오크리스트 파마슈티칼스라는 업체가 개발했다. 원래 C형 간염 치료제로 개발했으나 설치류와 원숭이 실험 결과 에볼라 바이러스 질환을 비롯한 바이러스 감염 질환에도 효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빠른 트랙을 통해 인체 효력 시험을 진행 중이다.

FGI-106은 예방과 치료 효과를 모두 갖추고 다양한 종류의 바이러스에 듣는 광범위 항바이러스제다. 바이러스가 숙주세포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방식으로 바이러스를 퇴치한다. 특히 한국에서 서울대 의대 이호왕 박사에 의해 처음 발견된 한탄바이러스의 관련 질환이나 댕기열 등에 효과를 보이며 에볼라에도 효과를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의 시후안약품이 해방군의학교와 함께 개발한 광범위 항생제 JK-05도 RNA 폴리머라제라는 효소를 억제해 에볼라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실험적인 사용=에볼라와의 초기 전투에서 미국이 가장 먼저 사용을 임시 허락한 치료제 후보도 눈길을 끈다. FDA는 서아프리카의 에볼라 감염국가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하다 감염된 미국인이 긴급 귀국하고 미국 내에서 환자가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는 일이 발생하자 2가지의 허가받지 않은 의약품에 대해 미국인에 대한 임시 투약을 허용했다. 미국 벤처 맵파마슈틱스가 개발 중인 '지맵'은 여러 항체를 혼합해 효과를 기대하는 약이다. 'TKM-에볼라'는 유전 전달에 관여하는 RNA의 작용을 방해해 바이러스를 물리친다.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테크미라 파마슈틱스가 개발 중이다. 이들을 투약한 결과 일부는 목숨을 건졌지만 사망 사례도 있다. 아직은 '신병 훈련' 단계의 치료제지만 희망은 남아있다는 이야기다.

채인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