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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으로 대화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대학가 분식센타 식탁에 앉은 한 여대생이 종업원을 향해 아무말없이 손가락 두개로 V자를 그리고 이어 손가락 넷을 펴 보인다.
주문을 받은 종업원은 잠시후 「V라면」 한 그릇과 「사발면」한 그릇을 내놓는다.
핑거 랭귀지 (수화) - 최근 대학가 주변에서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신종 보디 랭귀지. 손가락을 사용하여 간단한 감정표시와 아울러 라면 주문의 암호로 애용된다.
핑거 랭귀지가 대학가의 대용언어로 등장한 것은 이번 학기가 시작된 지난 3월중순께부터.
유행에 민감한 학생들이 근원지가 불분명한 이 표현법을 어디선가 배워와 친구들에게 사용하면서 대학가의 다방과 분식센터를 휩쓸더니 강의실에까지 침투, 대부분의 학생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다.
핑거 랭귀지는 손가락을 펴는 숫자와 모양에 따라 의미가 부여되며 손가락 숫자와 의미하는 말의 글자수가 같은 것을 원칙으로 하되 의미가 달라진다.
핑거 랭귀지의 사전을 만들어 보면 - 먼저 분식센터 (대학가 분식센더는 종업원들이 수화에 대한 센스가 없으면 장사를 못한다)
▲손가락 하나=원짜장 ▲둘=브이라면 ▲셋=삼양라면▲넷=사발면▲다섯=오향면▲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면=골드라면▲허프를 가리키면=궁중면▲배를 긁으면=짬뽕라면.
기타장소 (손가락 숫자와 의미하는 말의 글자수가 같다).
▲엄지만을 펴 보이면=「흥」(코웃음) ▲엄지와 검지(집게손가락)를 펴 보이면=「웃겨」▲검지와 중지를 펴면 「졌다」(승리의 상징인 V자의 역설적 의미) ▲엄지·검지·중지 세개를 펴면= 「질렸다」 ▲엄지를 제외한 손가락 네개를 펴면=「할말 없다」▲다섯개 모두를 펴면=「실수한 거야」(어떤 일에 맹활약중인 친구를 평할 때 또는 자신을 칭찬해줄 때 「실수로 잘된 것일뿐」이라는 응답) ▲오른쪽 손가락을 다 펴고 윈쪽 엄지를 펴면=「못생기면 다냐」 (화장 많이 한 여학생을 빈정거릴 때 사용)▲오른쪽 손가락 모두와 윈쪽 손가락 2개를 펴면= 「신경쓸 거 없잖아」 ▲오른쪽 손가락 모두를 펴 상대방에게 보이며 위아래로 흔들다가 갑자기 손끝을 아래로 향하도록 뒤 집으면=「×랄하고 자빠졌네」▲검지손가락으로 ㄱ자를 그리면= 「인간이하」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는 뜻).
핑거 랭귀지는 남학생보다 여학생들 사이에서 더욱 유행하고 있는데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공정과 부정의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
김성미양 (21·서울여대 3년) 은 『손가락 대화는 직접대화가 상대방의 오해나 감정을 유발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그러나 임중찬군(21· 한대2년)은 『장난기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면서『유행치고는 지나친 것 같다』고 말했다.
은어와 속어를 연구하고 있는 김해성교수(서울여대)는『무성언어의 일종으로, 은어의 형태로 볼수 있고 대학문화의 정체를 반영한 것이지만 대학생들이 지적인 깊이보다 너무 재치에만 흐르는 것 같아 아쉽다』 면서 생명력 없이 곧 쇠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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