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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성의 공허」어떻게 메울까|"그룹" 인터뷰로 그들의 얘기를 들어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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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곗바람, 춤바람, 부동산 투기열풍, 교정의 치맛바람-. 이 모든 바람직하지 못한 한국사회 위에 불고 있는 「바람」의 장본인이 「중년여성」 이라는 것은 이제는 거의 고정화되어버린 한국 사회의 통념이다. 젊음이 가고 있다는 초조로움 속에 바쁜 남편, 이제는 품을 떠난 자녀들로 공허해 하는 그들은 무슨 일인가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변천하는 사회 속의 가정, 그 주인공인 중년여성들의 고독과 방황, 그리고 바람직한 삶의 방법을 그들의 그룹인터뷰와 전문가의 진단을 통해 알아본다.
여자의 중년은 현실에 눈뜨는 나이다. 10여년간 함께 살아온 남편이 완전한 타인이라는 사실을 어느날 문득 깨닫고 당황하는 나이. 그리고 남편의 능력과 지위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그 존재를 새삼 평가, 체념하고 허탈해 하는 시기다. 무언가 새로운 출발을 꿈꾸고 때로는 시도하기도 한다.
『서로에게 길들여진 데다 이제는 결코 상대방을 바꿀 수 없다고 체념하게 되어 오히려 편안해진 상태라고 할수 있습니다. 기대할수록 피곤하다는 사실을 아니까 이제는 부부싸움도 거의 하지 않아요.』 결혼생활 12년째 3명의 자녀를 둔 30대 후반 가정주부의 얘기다.
『어느 울타리 안에서 남편을 얽매지 않고 풀어 놓아주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데이트도 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어떤지는 알 수 없어요』 『결혼 초에는 어렵고 신경이 쓰여 꽤나 남편 시집살이를 했지만, 지금은 편안해요』『서로 믿고 있으니까 조금 섭섭한 소리를 해도 속마음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 지나치고 말지요. 덤덤하지만 그동안 두터운 정이 쌓였다고 할까요.』
인터뷰에 응한 10여명의30대후반, 40대의 중년여성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부부관계는 그들 부모들의 부부관계와는 크게 달라졌다는데 동의한다. 『가정 안의 여권이 세어진 것은 확실하다』 『친정의 비중이 전에 비해 높아졌다』 등.
그러나 어머니세대에 비해 많이 불안해하고 공허해하는 것 또한 사실인 것 같다. 『1개월의 해외출장에서 돌아온 날부터 거푸 닷새째 밤12시가 넘어 만취해 귀가를 하더군요. 남편을 기다리다 잠을 설치던 밤이 많았는데 어느 새벽잠을 깨니 문득 옆에서 곯아떨어진 남편이 정말 남같이 느껴지더군요』
연이어 『나는 왜 살고 있는가. 나의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어떻게 이렇게만 평생을 살수 있는가』 하는 의문들이 뭉게구름처럼 솟아나 자신과의 갈등이 시작되더라는 고백이다.
『막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나니까 심심하고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그 감정은 때로는 너무 절실하여 어쩔수 없이 불쾌감을 동반하더군요.』 시기적으로 중년의 남성들은 사업에, 직장일에 전력투구를 하게 마련이다. 사회적 성공이나 부의 축적 등이 이시기에 성패를 좌우하게 되는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밖에서 보내고 주말은 그대로 바쁜 스케줄에 쫓긴다.
귀가한 남편은 완전히 피로하여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크고 작은 집안 일은 모두 아내에게 떠맡기고 자신은 하숙생처럼 돈버는 기계처럼 산다. 따라서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따돌려졌다는 소외감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정신신경과를 찾는 가벼운 노이로제 환자중 60∼70%가 부부관계가 원인입니다. 괜히 가슴이 옥죈다, 잠이 안온다 등 막연한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며 내과병원 앞에 장사진을 이룬 여성들 중 대부분은 신체성 노이로제라고 하는, 정신적 공허와 갈등이 원인입니다』정신신경의 이시형박사는 말한다.
특히 가계부와 씨름하며 남편 뒷바라지, 자녀 키우기에 헌신해온 주부일수록 중년기에 이르러 더 큰 공허감과 자기갈등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또 「젊음과 미」를 강조하며, 끊임없는 광고를 통해 그 중요성을 세뇌시키는 현대문명은 자신이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나이인 중년여성에게 낭패감을 맛보게 한다. 의부증이 생기는 여성 또한 적지 않다고 한다.
결혼당시 지적인 수준이 비슷했던 부부들도 남편은 바깥생활에, 아내는 집안 일로 너무 다른 세계에 몰두하다 중년에 이르 쉽게 메울 수 없는 갭이 생겨 있고 서로의 관심사 또한 현격하게 달라있음을 알게된다. 어느덧 대화가 통하지 않는 부부로 되어 있는 것이다.
작가 박완서씨는 이들 중년 여성들에게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이박사는 『결혼은 자신을 제로(0)상태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느라 자신을 텅비워 버린 여성들은 궁극적으로는 남편의 사랑도, 자녀들로부터의 존경도 받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 노력을 통해 부부가 감정적으로 밀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 자신의 지식과 관심의 세계를 넓히고 취미를 살려 그곳에 몰두함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갖고, 나아가 일을 갖거나 사회봉사 활동등을 함으로써 사회와의 사이에 조그마한 창을 여는 일은 다같이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다. 젊은 시절의 기억을 공유한 친구와의 만남, 남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가지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박금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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