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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기자 보호' 나선 미 의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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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종혁 워싱턴 특파원

요즘 미국에선 흥미로운 실험이 벌어지고 있다. 입법.사법.행정부와 제4부(언론) 중 누가 가장 힘이 센지 알아보는 실험이다.

이달 초 워싱턴 DC 법원이 뉴욕 타임스의 여기자 주디스 밀러를 교도소로 보낸 것이 발단이었다. 밀러 기자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발생한 정보누설 사건, 이른바 '리크 게이트(Leak Gate)'와 관련해 취재원 공개를 거부했다. 화가 난 판사는 법정 모독죄를 적용해 그를 잡아 가뒀다. 이미 30년 전 미 언론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하야시켰다. 그토록 힘이 센 언론도 법 앞에서는 꼼짝 못한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입법부가 언론 편을 들고 나섰다. 여야 중진 의원들이 20일 청문회를 열어 "국가안보와 직접 관련된 사안을 빼곤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기자들이 정보 출처를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법을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른바 '기자 보호법'이다.

뉴욕 타임스의 저명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새파이어는 청문회에 나와 "기자들의 힘은 취재원에게 '나를 신뢰해도 좋다. 결코 당신 신분을 밝히지 않겠다'고 말할 때 나온다"고 역설했다. 밀러 기자의 구속은 기자들의 무기를 빼앗은 것이며, 결국 정보의 자유로운 소통을 막아 민주주의에 해가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법무부는 "기자 보호법이 만들어지면 법을 집행하고 테러리즘과 싸우는 행정부의 능력이 약화된다"고 반박했다.

어떤 결론이 나올지는 모른다. 결국은 여론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의회.사법부.행정부.언론 모두 국가공동체의 틀 안에 있고, 그 틀의 주인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이 한국에서 발생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 법원보다 정부가 먼저 나서 언론 공격에 앞장서지 않았을까. 언론은 언론대로 갈라져 정부에 동조하거나 반발하고, 입법부는 '여당=거수기''야당=무조건 반대'로 갈리고, 사법부는 여기저기 눈치 보기에 바쁜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자유가 공짜가 아니듯 민주주의도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등급 역시 천차만별이다. 민주주의의 질과 수준을 높이고 내용을 채워나가는 일은 누구 혼자만의 노력으로 될 일이 아니다.

김종혁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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