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녀의 벽' 깬 영업사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제지업체 반품 담당 이진희씨 "미인계 ? 실력이죠"

신무림제지㈜ 마케팅팀 YES센터에서 일하는 이진희(26.사진)씨. 그는 제지업계에서는 드물게 영업 일선에서 뛰고 있다.

그의 활동무대는 서울 을지로의 인쇄소 골목과 일산 출판단지 등이다.제지업체의 고객인 종이류 중간도매상과 인쇄소를 돌며 '종이 클레임'을 처리하는 일을 한다.종이류의 반품과 보상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씨는 "인쇄소는 대부분 밤에도 일을 많이하는데 종이때문에 일을 못하게된 업주들에게 험한 소리도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제지업계에서 종이 클레임 처리 업무는 오랫동안 '금녀(禁女)의 땅'이었다. 처음 인쇄소를 방문했을때 고객들은 "여자가 인쇄에 대해서 알면 얼만큼 알겠느냐"며 냉대했다. 또 인쇄소 업주의 부인들이 회사 경리업무를 하는 곳이 많은데 여자가 여자를 무시할 때가 더 힘들었다고 한다.

이씨는 종이와 인쇄 기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이런 어려움을 이겨냈다.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종이 보관법을 비롯해 시장 상황, 타사 동향 등도 자세히 고객들에게 알렸다.이씨의 대학전공은 제지공학과다.우리나라에서 제지공학과가 개설된 대학은 강원대가 유일하다.

여성 영업사원에 대한 고객 반응이 차츰 좋아지면서 제지업계에서는 신무림제지가 '여우 짓(?)'을 한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삭막한 인쇄업계에 여성을 투입해 미인계를 쓴다는 것이다. 이씨는 펄쩍 뛰었다. "미인계가 아니라 실력입니다. 굳이 양보하자면 '실력을 겸비한 미인계' 쯤으로 해두지요."

서경호 기자 <praxis@joongang.co.kr>

주류업체 컨설턴트 류주미씨 "사람 만나는 게 좋아"

다국적 주류회사 디아지오 코리아에 다니는 류주미(29.사진)는 주로 밤에만 일한다.

그는 주류업계에서 몇 안되는 '바 컨설턴트'란 이름의 영업사원이다. 류씨는 오후 5시부터 서울 강남의 바를 돌아 다닌다. 자사의 판촉물을 나눠 주고 파티와 이벤트를 기획해준다.

류씨가 담당한 바는 60곳이 넘는다. 류씨는 "한밤중에 집에가도 오전 8께 일어나 꼭 운동을 하기 때문에 예전보다 몸이 더 좋아졌다. 영업직이 원래 체질인가 봐요"라며 웃었다.

2002년 디아지오코리아에 입사한 류씨는 최근 내근부서에서 일하다 영업직을 지원했다. 그는 "주변에서 '활발할 성격에 잘 어울리겠다'며 부추키기도 했지만 사람 만나는 것을 워낙 좋아해 내가 손을 들었다"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가 극구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음주문화를 뜯어고치겠다'며 어머니를 설득했다"고 한다.

류씨는 "바는 남자 고객 못지 않게 여성들도 많이 찾는 곳이어서 바의 특색에 맞춰 영업전략을 세운다"고 말했다. 바 업주에게 술 접대 대신 간식거리를 틈틈이 갖다주면서 호감을 산다고 한다.

그러나 업주들은 1m70㎝ 훤칠한 키의 류씨를 이벤트 도우미로 착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대부분 여자 주류 영업사원을 처음 본 탓이다. 류씨는 요즘 경영과 마케팅 공부에 열심이다.

'컨설턴트'라는 호칭에 걸맞게 바 운영 전반에 대한 컨설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다. 5년 정도 국내에서 영업의 기본을 다진 뒤 해외영업으로 발을 넓히는 것이 류씨의 꿈이다.

그는 "아직까지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이 많지만 전문가로 당당히 인정받도록 열심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