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 포럼

테러와 그 상징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런던 사람들은 지하철을 튜브(Tube)라고 부른다. 지하철역 입구에 붙은 정식명칭인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 지하철역에 붙어 있는 서브웨이(Subway)는 미국식 표현이다. 영국에서 서브웨이는 지하도다. 튜브라 부르는 것은 지하철 내부가 무슨 관(管)처럼 좁고 어둡고 끝없이 길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100여 년 전 만들어진 그대로다. 지저분하고 답답하다. 냉방시설도 없다. 출근길 러시아워엔 후텁지근한 땀냄새가 고약하다. 어떤 역엔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가 없이 큰 엘리베이터 두 개로 손님을 지상과 이어준다. 오래된 통로는 두 사람이 비켜가기 힘들 정도로 좁은 미로다. 서울의 지하철이 새로 만든 고속도로라면 런던의 지하철은 찌든 도심의 뒷골목이다.

<상징 1-성공>

그런 지하철에 폭탄이 터졌다. 테러 발생 전날까지 런던에 살았었기에 튜브가 곧바로 연상됐다. 불 꺼진 지하 플랫폼의 질식할 것 같은 연기 속에서 출구를 더듬는 모습이 연상됐다. 런던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상상을 할 것이다. 테러는 공포의 상징이다. 어둡고 숨 막히는 지하 공간은 죽음의 고통을 극화시켜줄 만한 상징이다. 그 점에서 런던 7.7 테러리스트들은 적절한 목표물을 잡아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했다.

<상징 2-실패>

두 번째 상징 조작은 실패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사자 4명이 모두 숨졌기에 확인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정황으로 볼 때 이들은 런던 도심에 십자가를 긋고자 했다. 테러리스트 4명은 각각 십자가의 한 축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십자가는 물론 기독교의 상징이다.

폭탄 배낭을 짊어진 4명이 폐쇄회로(CC)TV에 잡힌 것은 사건 당일 오전 8시30분 킹스크로스역이다. 킹스크로스는 런던의 북역(北驛)에 해당된다. 테러리스트들은 흩어졌다. 그리고 정확히 20분 뒤 지하철 3곳에서 폭탄이 터졌다. 폭파 현장을 지도 위에 그리자면 킹스크로스역은 북쪽, 리버풀스트리트역은 동쪽, 에지웨어로드역은 서쪽이다. 세 곳을 연결하면 런던 도심에 거대한 십자가의 세 축이 그려진다. 그런데 아래쪽이 없다. 남쪽에선 아무것도 터지지 않았다. 테러리스트 가운데 가장 어린 하지브 후세인(18)이 약속대로 자폭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후세인은 2m나 되는 키에 주먹을 잘 휘두르는 뒷골목 불량배다. 마약에도 손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약속된 시간으로부터 꼭 1시간이 지난 다음 킹스크로스역 인근 버스에서 자폭했다. 약속했던 역에서 마지막 순간 망설임 속에 자폭하지 못하고 지상으로 올라와 고심하다 버스에서 결행한 것으로 보인다.

<도심 속의 식민지>

런던 도심에서 지하철로 30분가량 벗어난 동북쪽 부심의 한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학생의 80% 이상이 속칭 '인스방파(인도.스리랑카.방글라데시.파키스탄 출신 이민자)'였다. 교장은 영국인이었다. 그러나 교사 역시 대부분 인스방파였다. 특히 수학을 가르치던 젊은 남자선생이 평생 한 번도 깎지 않았다고 자랑하던 무성한 턱수염이 기억난다. 턱수염은 남성의 상징이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재건을 위해 급히 수입된 값싼 노동력의 자손들이다. 지금도 이 지역 사람들 대부분은 단순 임금노동자로 하층을 이루고 있다. 도심 속의 식민지다.

테러리스트들은 비록 영국에서 태어나 영국 국적이지만 사실은 현대판 게토에서 무슬림으로 자란 청년들이다. 능력이 모자라는 아이는 어두운 뒷골목으로 빠지고 똑똑한 아이는 신분상승을 꿈꾸며 도심으로 진출하지만 좌절하기는 마찬가지다. 유럽인들의 뿌리 깊은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이슬람 공포증) 탓이다. 청년들은 스스로 알카에다를 찾아 나선다.

유럽엔 약 2000만 명의 무슬림이 살고 있다. 아랍권에서 계속 유입되고 있다. 출산율도 높다. 중세 무슬림의 유럽 정복 이래 1000년 만의 대이동으로 불린다. 유럽에서의 테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오병상 국제뉴스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