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해주」 5대째 전수|고 고대 김춘동 교수 댁서 잇는 「고유의 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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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정월 첫 돼지날(해일)부터 돼지날만 골라 세 번 세 겹으로 안쳐 빚는 술, 삼해주-. 담가서 마시기까지 1백일이 걸려 백일주, 정월 돼지날 담그면 춘삼월 버들개지가 날릴 무렵 먹는다고 해서「버들개지 술」(유서사)이라고도 불리는 「멋」과 「맛」을 함께 지닌 우리 고유의 술이 한 한학자의 집안에서 맥을 잇고있다.
지난 1일 작고한 고려대 김춘동 교수(79·한문학)댁이 바로 우리 나라 유일의 삼해주 비법 전수가문.

<백일간 익혀야 제 맛>삼해 주는 고려 때부터 궁중과 귀족계층에서 사랑 받던 술. 그러나 서민가 경에선 담그기 어려운 순곡 주인데다 양조법의 특수성으로 거의 맥이 끊겨 지금은 이름조차 생소해졌다.
문헌에 등장하기는 조선초기의학자 서거정의 문집「태평한화」가 처음이나 양조 법상 고려시대의 술로 전해지는 호산춘, 약산춘 처럼 세 번 담근다고 해서 학자들은 고려시대의 「춘주」가 바로 삼해 주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태평한화」에는 병고에 시달리는 노인이『죽으면 삼해주 맛을 못 볼 테니 죽기 싫다』고 떼를 쓰는 장면이 나온다.
「이승의 미련」으로 남을 만큼 기막힌 맛의 술.
50여년 삼해주를 빚어 전통을 손끝에 간직해온 김 교수의 미망인 정률을씨(77)는 『맛은 진하고 빚은 맑고 시어지지가 않으며 몸을 보 하니 솔이면서 약』이라고 했다.
보통 약주와는 달리 세 번에 걸쳐 빚어 맛이 순하면서 진하다. 그윽히 풍기는 향기와 된맛이 그만이다. 마신 뒤에 달이 있을 수가 없다. 빛깔은 투명하게 맑아 엷은 푸른 빚이 도는 것이 그야말로 청아한 선비의 품격. 며칠만 두어도 금방 시어지는 보통 약주와는 달리 두고두고 1년을 먹어도 시어지지가 앉으니 비단에 수롤 놓은 셈. 집에 두고 보신용으로, 귀한 손님의 접대용으로 이에 더할만한 것이 없다.
한말 형조판서를 지낸 안동 김씨 명가의 후예로 태어나 한학과 강단을 지키며 살다간 김교수는 평생을 부인이 담근 이삼 해주의 맛과 풍류 속에 살았다. 유진 오전 총장을 비롯한 고려대의 많은 동료교수들도 김 교수 댁 삼해주 맛에 반한 팬들. 그 밖의 많은 사회명사들 역시 「김 교수댁 삼해주」를 임에서 입으로 전해듣고 애음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진오 박사 등도 즐겨 김 교수 댁의 삼해주 전통은 김 교수의 고조 할머니인 순조의 둘째
공주인 보온공주에서 비롯된다. 사가로 하가한 공주는 무더운 여름 시아버지의 더위를 식혀드리려 공중에서 익힌 삼해주를 빚어 올렸다. 해마다 술빚 기를 거르지 앓았고 솜씨는 며느리에서 며느리로 전해져 현재의 김 교수 부인에게까지 전수됐다. 『정월 첫 돼지날에 멥쌀 한 되를 빻아 쌀가루를 만듭니다. 거기다 밀가루 한 되를 섞어 끓인 물을 식혀 버무려요.
반죽이 완전히 식으면 누룩가루 한 되를 섞어 독에 넣고 술을 안칩니다.
물은 반드시 팔팔 끊인 물을 식혀서 쓴다. 반죽은 무르지 않게 물을 조금만 붓는다. 누룩을 넣어 술을 안치는 시간은 꼭 해시(하오9∼11시)에 하도록 배뒀다고 했다. 독은 잔 곳에 보관하되 얼리지도, 데우지도 않아야 한다.
12일이 지난 두 번째 돼지날-. 『멥쌀 한말을 빵아 반쯤 찝니다. 거의 안친 술밑을 여기에 쏟아 함께 버무립니다. 물은 끓여서 식혀 써야되고….』 버무린 술밑은 역시 차가운 곳에 보관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세 번째 안침. 셋째 돼지날이 되면 멥쌀 서말로 술밥을 낀다. 이 밥을 잘 찌느냐 못 찌느냐에『술맛이 좌우된다』고 정씨는 말한다.
꼬들꼬들하게 찐 밥을 독 안에 넣고 두 발효시킨 술밑을 함께 쏟아 부어 끓여서 식힌 물 35사발을 붓고 버무려 독을 봉한 후 땀을 파고 묻는다.

<올림픽 앞서 개발할 만>묻은 날부터 1백일. 봄이 용트는 땅 밑에서 독 안의 쌀과 누룩은 세 번 발효 끝에 한데 어우러져 신비로운 땅과 향취를 익히는 것이다.
쌀은 멥쌀만을 써야한다. 『찹쌀은 쉬이 시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든 과정에서 골이지 않은 생수는 한 방울도 들어가선 안 된다. 맛을 버릴 뿐 아니라 술이 쉽게 시어지고 만다. 정성 없이는 빚기가 어려운 술이다.
정씨는 굳이 돼지날만을 고르는 이유를『날씨와 관계가 있는 것 같으나 그렇게 배웠을 뿐 이유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젊은 며느리들에게 비법을 전수해야할텐데 젊은이들이 너무 바빠 권할 틈이 없다』면서 우리의 전통 하나가 자기 대에서 끊길까봐 안타깝다는 정씨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홍일식 교수는 『삼해주를 빚는데, 쌀이 많이 들고 양조 법이 까다로워 「귀족주」인 흉이 있으나 올림픽을 앞두고「우리 술」이 없는 상황에서 삼해주를 세계에 내놓을 만한 한국의 솔로 개량, 보급하는 것도 검토해 볼만하다』고 말했다. <신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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