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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구글, 숟가락 회사를 왜 샀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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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건강검진일을 맞아 병원을 찾은 직장인 이미래(가명)씨는 조그만 알약 하나로 복잡한 암진단 검사를 끝낸다. 알약을 먹으면 그 안에 있던 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크기의 입자가 체내에 퍼져 비정상적인 세포에 달라붙는다. 건겅검진 기기는 이 나노입자로부터 각종 데이터를 전달받고 신체의 이상징후를 분석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구현될지 모르는 첨단 정보기술(IT)이다. 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구글은 ‘구글X 프로젝트’의 하나로 특수 코팅된 나노입자를 몸속에 넣어 각종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구글X는 안경으로 사진·동영상을 찍고 전송하는 ‘구글 글라스’ 같은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해낸 구글의 비밀연구소다. 구글X에서 생명과학부문을 이끄는 앤드류 콘라드 박사는 “지금까지의 진단법이 1㎞ 상공에서 길을 보는 수준이었다면, 나노 진단법은 직접 골목에 들어가 관찰하는 것처럼 몸 상태를 자세히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구글 스스로도 기술 개발에만 최소 5년 이상이 필요하다고 할 정도로 이 기술이 실현 가능한지, 또 안전한지를 두고 벌써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의학계 일각에서는 우스꽝스럽고 돈만 낭비하는 일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하지만 래리 페이지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이를 달 탐사선과 비교하면서 “이런 연구는 미래의 혁신을 앞당기는 동시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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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 강자인 구글이 인터넷 기업의 영역을 넘어 10년, 30년뒤 미래를 지배할 새로운 먹거리를 선점하는 ‘창조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접근 방식도 기존의 판을 완전히 뒤집거나 전혀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는 급진적 형태여서 전세계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다.

 구글의 변신을 이끄는 원동력은 우선 혁신적인 신기술 연구다. 구글에선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지만, 일단 결과가 나오면 과거에 없던 혁신산업 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파괴적 신기술을 개발한다. 구글은 이런 기술을 ‘문샷(Moonshot) 싱킹’(달나라로 사람을 보내는 방법 같은 혁신적인 생각)이라고 정의한다.

 구글은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M&A에도 적극적이다. 최근 4년간 구글은 100개 정도의 기업을 M&A 했다. 덕분에 검색업체로 시작한 구글은 이제 PC와 모바일·웨어러블 등을 포괄하는 종합 IT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헬스케어 산업 진출을 목적으로 구글이 사들인 미국계 벤처회사 리프트랩스(Lift Labs)의 전자 스푼인 ‘리프트웨어(사진 왼쪽)’. 구글이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육성 중인 배달용 무인항공기 ‘드론(가운데)’. 지난해 구글에 인수된 벤처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오른쪽)’가 개발한 군사용 로봇. [사진 각 사]

 ‘문어발’식 외연 확대로 비치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흐름을 관통하는 큰 줄기가 있다. 자신들이 부족한 내부 역량을 공격적인 M&A로 채우며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구글은 이런 M&A를 통해 전세계를 타깃으로 한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융합 시너지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05년 인수한 모바일 운영체제(OS) 개발업체 안드로이드다. 구글은 창업한 지 2년도 되지 않았던 안드로이드의 가능성을 꿰뚫어 보고 5000만 달러에 사들였다. 그렇게 인수한 안드로이드는 현재 세계 모바일OS 시장의 80%를 차지하며 구글이 세계 모바일 생태계를 지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앤디 루빈 안드로이드 창업자는 “삼성전자에 M&A 의사를 타진했지만 삼성전자는 ‘우리는 그 분야에 2000명을 투입하고 있다’며 거절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튜브 인수 역시 ‘신의 한 수’로 꼽힌다. 구글은 2006년 당시 유망 동영상플랫폼으로 주목받던 유튜브를 16억5000만 달러에 사들였다. 유튜브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하며 구글 광고 매출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다.

 그렇다고 구글의 M&A 전략이 거창한 것만은 아니다. 알버트 리 구글 사업개발부 수석은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2014 글로벌 기업과의 만남의 장’에서 “구글이 찾고 있는 것은 ‘칫솔’ 같은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아무리 단순한 제품이라고 해도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줄 수 있다면 M&A 대상으로 고려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런 구글의 M&A는 현재 진행형이다. 올해에는 미래 시장으로 꼽히는 스마트홈 전문기업 ‘네스트랩스’를 32억 달러에 손에 넣었다. 위성영상 서비스 기업인 ‘스카이박스 이미징’, 인공지능에 특화한 ‘딥마인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송자’, 폐쇠회로TV(CCTV)업체 ‘드롭캠’ 등도 사들였다.

 주목할만한 것은 구글의 M&A 포트폴리오다. 이를 통해 구글이 그리는 미래 서비스의 모습과 미래 IT산업의 발전방향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SK증권 고승희 연구원은 “제각각인 M&A처럼 보이지만, 살펴보면 웨어러블·빅데이터·클라우드·사물인터넷(IoT) 등 다가오는 미래 트렌드를 선점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며 “핵심은 사람들의 일상 생활 속에 구글 서비스에 대한 사용빈도를 높여 ‘구글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구글은 미래사업 개발도 단기적인 수익을 노리기보다는 패러다임의 변혁을 꿈꾼다. 삼성 등 많은 국내 대기업이 10여 년 전부터 신사업을 찾는데 매달려왔지만 대부분 태양광·바이오 등 남들을 따라가는 ‘테마 업종’에 매달리며 시행착오를 겪은 점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구글이 진행중인 기술 프로젝트에는 스스로 운전하는 무인자동차, 세계 모든 곳에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프로젝트 룬, 조립식 디스플레이, 배달용 무인항공기 드론 등이 있다. 여러 현실적인 규제나 편견 같은 ‘장벽’이 만만찮은 분야다. 그러나 결국에는 시장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심지어 우주로 가는 엘리베이터, 하늘을 나는 풍력발전소 같은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기술도 있다.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일단 성공하면 완전히 새로운 구글만의 수익원이 될 수 있다.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문송천 교수는 “미래 산업은 말 그대로 현재 없는 획기적 비즈니스를 찾는 일”이라며 “신사업을 한다면서 돌다리도 두들겨본다는 식으로 접근하거나, 법·규제부터 뒤적이는 마인드를 바꿔야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글의 이런 기존 틀을 깨는 신사업 개척은 계속되고 있다. 구글은 ‘암 진단 알약’ 외에도 눈물로 당뇨병 환자의 혈당을 분석할 수 있는 콘택트 렌즈, 유전 정보와 인체 조직 정보를 반영한 인간 생체지도 등의 기술개발을 진행중이다. 손 떨림 증상을 겪고 있는 환자가 숟가락을 들었을 때 흔들리는 것을 막아주는 ‘전자 스푼’ 개발사(리프트랩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헬스케어 분야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고, 난치병·희귀병 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친(親)인류적인 프로젝트다. 이젠 IT분야뿐 아니라 구글이 모든 비즈니스의 질서를 바꾸며 미래 세상의 운행 규칙을 만들어가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황종성 한국정보화진흥원(NIA) 정부 3.0센터장은 “지난 10여 년간 구글의 규모와 구조는 완전히 변했지만, 벤처 초기의 열정과 도전정신은 그대로”라며 “프라이버시 보호와 빅브라더 논란같은 부작용도 나오지만, 구글의 도전 정신이 산업 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었음을 부인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손해용·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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