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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슈 인터뷰

태권도 올림픽 종목 지킨 조정원 WTF총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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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태권도가 올림픽 탈락의 위기를 넘기고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정식종목으로 살아남았다. 8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투표 결과다.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는 태권도 정식종목 존속을 위해 그야말로 발에 불이 나도록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한숨을 돌린 조 총재는 "태권도가 살아남으려면 과감한 개혁이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손장환 스포츠팀장이 15일 만났다.

-IOC 총회에 참석했던 박용성 국제유도연맹 회장이 "투표하던 날 조 총재가 두 번 죽다 살아났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투표일인 8일 아침까지만 해도 IOC 집행부 관계자나 IOC 위원들 사이에는 '퇴출은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IOC 위원은 나를 보며 '오늘은 힘든 날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 살아남을 것이다(Today is tough day, but we all will be alive)'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프랑스어 알파벳 순서대로 발표한 투표 결과에서 네 번째인 야구가 제외됐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태권도 바로 앞인 소프트볼도 탈락했습니다. '태권도 포함'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땀이 납니다. 긴장의 순간은 그날 저녁에도 찾아왔습니다. 올림픽 진입을 원하는 5개 종목(가라테.스쿼시.골프.럭비.롤러스포츠)에 대한 투표였죠. 가라테의 진입은 태권도에 큰 부담입니다. 하지만 가라테는 3분의 1의 지지(찬성 38, 반대 63)만 받아 탈락했죠. 두 번 죽다 살아난 셈입니다."

-그동안 몇 나라나 다녔고, 몇 명이나 만나셨습니까.

"지난해 총재를 맡은 그 순간부터 관심사는 온통 7월 8일 IOC 총회였습니다. 1년간 20여 개국을 다녔습니다. 지난해엔 90일간 외국에 나가 있었고 올해는 11회 74일 나가 있었습니다.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면서 우리의 개혁 보고서가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과도 보고서를 가지고 직접 질의응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태권도가 살아남은 가장 큰 이유였다고 봅니다."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에서는 무엇이 달라집니까.

"제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태권도가 재미있게 바뀌겠습니까'였습니다. 재미가 있어야 방송이 중계하고 중계를 해야 스폰서도 붙으니까요. 태권도의 가장 큰 과제는 이러한 선순환을 만들어 내는 데 있습니다. 개혁 보고서도 관중을 흥분시키는, 재미있는 태권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했어요. 곧 경기개선위원회를 만들 것입니다. 4월 마드리드 세계선수권에서 ▶2분 3회전 ▶서든데스(연장전) ▶경기장 크기(12×12m에서 10×10m로) 등 이미 바뀐 것은 시행했습니다. 앞으로 전자 호구나 심판평가제 등을 논의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2008년 올림픽 직전에 열리는 베이징 세계선수권에서 시행한 뒤 올림픽에도 똑같이 적용할 생각입니다."

-태권도는 종종 '메달 색깔이 바뀐다'는 지적, 다시 말해 판정 시비가 가장 큰 문제일 것입니다.

"포인트제를 실시하는 모든 종목의 공통된 문제점입니다. 20일 전자 호구 장비에 대한 시연회를 합니다. 국내외 세 개 업체의 장비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정할 것입니다. 그 뒤 시연과 대회를 거쳐 점검해 나갈 겁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틀림없이 전자 호구가 도입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판정 시비가 거의 줄어들 것으로 기대합니다."

-태권도가 지나치게 아시아 중심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도 크게 활성화돼 있습니다.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도 태권도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올림픽이 끝난 뒤 IOC로부터 받은 지원금의 3분의 2 이상을 제3세계 태권도 활성화를 위해 지원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국내의 관심이 저조한 것입니다. 관중이 너무 적습니다. 역시 핵심은 '재미'입니다. 태권도를 재미있는 경기로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큰 과제입니다."

-태권도가 영연방(Common Wealth)대회나 지중해연안국대회 등에서 채택될 가능성은 있습니까.

"태권도는 올림픽.아시안게임.유니버시아드.프랑크폰(프랑스어와 이슬람교, 아프리카를 공통분모로 하는 지역)대회 등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현재 영연방.지중해연안대회에서는 채택돼 있지 않고요. 태권도가 다시 한번 공인을 받았기에 꾸준히 접촉할 계획입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이전까지 그 대회에서도 정식종목으로 채택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WTF 가입국이 179개국이라고는 하지만 그중에는 태권도연맹으로 독립돼 있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나라가 무술연맹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태권도는 그 하위에 속해 있습니다. 가라테와 공존하기도 하고요. 우리는 장기적으로 분리해 나가는 작업을 할 것입니다."

-태권도 종주국으로서의 위상과 태권도의 세계화는 상충하는 개념 아닌지요. 어떻게 조화를 이뤄나갈 생각이십니까.

"종주국으로서 태권도를 무도로 갈고 닦는 것과 태권도를 세계화하는 것은 역할의 문제입니다. 역할이 다른 것이지요. 대한태권도협회는 국내 태권도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무도로서의 태권도를 발전시키고, 국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입니다. 국기원은 태권도를 연구하고, 지도자를 양성하고, 교육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고요. WTF는 스포츠로서의 태권도가 세계화하도록 끊임없이 개량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각자가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WTF의 세계화를 위해 외국인 총재가 나와야 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외국인 총재가 언제쯤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언제쯤 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화를 못할 때는 언제든지 가져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역할을 다한다면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태권도가 재미를 잃은 것은 한국 선수 탓이라는 비난도 있습니다. 포인트 위주의 경기 운영, 파벌 문제로 인한 나눠 먹기 등 말이죠.

"그것은 WTF 총재인 제가 언급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WTF 본부가 계속 한국에 있어야 하느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기구가 거의 없습니다. 많은 나라가 국제기구의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제 지원 등도 아낌없이 하고 있어요. 당분간은 한국에 계속 있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역사상 세계에 한국을 알린 세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서울 올림픽, 한.일 월드컵이 그것이지요. 태권도도 그 못지않게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있습니다. 태권도를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키워야 합니다."

-예산 대부분을 국기원 승단비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케팅에 더욱 힘쓰려 합니다. 돈이 있어야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태권도를 지원해 달라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사범을 보내 달라는 곳이 너무 많습니다. 정부에 제의 하나를 하겠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에 태권도 사범을 보낼 수 있게 제도를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병역 혜택이 가능한 순회 사범제도 같은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케네디가 만든 평화사절단처럼 태권도사절단을 만들어 태권도도 가르치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도 전파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국가 홍보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태권도를 국가 홍보 차원 전략에서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충분히 좋은 그림이 나올 겁니다."

만난사람=손장환 스포츠팀장
정리=강인식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