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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없는 자백은 무죄" 다시 입증|고 여인 왜 2번서도 무죄 선고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해설>
고숙종 피고인에 대한 2심 재판부의 무죄판결은 증거 없는 자백만의 형사사건이 엄격히 배척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입증했다.
검찰이 제출한 항소 이유 요지는▲검찰에서의 설 피고인 자백내용 자체만으로 판단해야 되는데 이미 증거능력 없는 경찰자백을 검찰자백에 포함시킴으로써 경찰자백의 모순 점을 검찰자백에까지 확대했고▲피고인 자백의 범행동기는 살인동기로서 충분하며▲범행 경로, 범행에 사용한 장갑, 범행장면 등은 원심의 심리 미 진이나 사실 오인이 있으며▲현장 상황에 대한 심리미진 등 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2심 재판부의 판만은『원심이 경찰자백을 증거로 하는데 동의하지 않고 그 진술의 임의성 여부까지도 판단함은 법원의 재량이며 실체진실 발견을 위해 취한 임의성에 대한 판단도 타당하다』고 밝혔다.
또 증거능력이 없다고 배척한 경찰 자백의 일부를 검찰자백의 일부로 보아 판단했다는 항소이유에 대해서는『공소사질·신문방법·입증방법 등을 보면 검사자신도 검사가 작성한 신문조서에 기재되지 않은 상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경찰진술을 토대로 하여 공소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하고『증거능력 없는 증거도 탄핵 증거로 사용할 수 있어 원심의 잘못은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고 피고인의 결혼이 죽은 윤 노파에 의해 정략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뒤 결혼생활·경제 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해 사건을 저질렀다는 자백동기에 대해서는『그 이유만으로 3명을 죽였다고 보기엔 범죄 동기가 부족하다』고 본 원심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범행현장 부분에 대해서는 윤 노파의 체격이 난간에 끼일 수 없고 만일 난간에 끼었다면 상해 부위나 정도로 보아 많은 피가 쏟아져 있을 텐데 아무런 혈흔이 없는 점으로 보아 객관적 현장 상황과 모순되고 원심이 객관적 합리성을 현저히 잃고 있다고 판단한 것도 정당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재판부는 검찰에서 실시한 녹음진술에 관해『그레이스 호텔 303호실에서 실시된 녹음은 그 장소가 경찰이 고 피고인을 심문 조사하던 호텔이었다는 점에서 검찰 자백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고 피고인이 감방 동료에게『사람을 죽였다』고 한 자백은 경찰에서의 폭행·협박 등에 의한 위축된 심리상태가 계속된 것으로 보아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은 바로 검찰 자백의 신빙성을 떨어뜨렸다고 본 원심의 판단이 정당한 판단이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의 1심 재판부가 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내렸던 것은 오직 피고인의 경찰·검찰에서의 자백만이 범죄 입증의 증거로서『검찰에서의 자백에 임의성은 있으나 신빙 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번 2심 재판부가 원심의 무죄 이유를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지난 2월1일 무죄 선고를 받았던 고 피고인은 대법원의 무죄확정 판결에 한 걸음 다가섰다고 볼 수 있다.
검찰의 상고의사 표시로 최고 법원까지 가게 된 이 사건은 앞으로 검찰에서의 피고인 자백의 임의성 인정 문제, 검찰 항소 이유였던 범행동기, 범행 현장, 범행도구 등에 대한 원심 재판부의 사실 오인, 심리미진 여부 등의 법률적 판단만이 남아 있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고 피고인의 구속기간은(구속일 지난해 8월 도일)모두 2백97일. 앞으로 무죄가 확정된다면 2심 선고일인 10일을 기준으로 했을 때 무죄판결에 의한 형사 보상금은 1백48만5천 원(1일5천 원)에서 2백37만6천 원(1일 8천 원 기준).
대법원의 형사사건 처리기간 4개월을 가산할 경우 보장금은 더 많아지게 된다.
2심 재판을 지켜본 많은 법조계 인사들은 형사재판에 있어서 엄격한 직접증거를 요구하고 있는 추세에 자백만이 유일한 증거였던 데다 특히 사건수사 과정에서 폭행이 문제가 되었고 수사를 맡았던 경찰관이 피고인의 재물을 훔쳤다는 여러 가지 상황이 재판부의 심증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권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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