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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과 무고 풍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 사회 병리의 하나로서 무고와 중상모략의 풍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근세사의 어지러운 풍파를 겪으며 그런 풍조는 고질화했고 오늘에 이르러서도 개탄의 소리는 여전하다.
엄연히 있는 부당 불법한 일을 드러내서 법에 호소하고 공의에 붙이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시민의 권리의식과 책임의식을 바탕으로 유지되는 민주사회에서 사회의 정의를 유지하는 의미에서 시민의 자발적인 고소와 고발은 정당하며 또 장려되어야할 일이다.
우리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부정, 비리, 불법의 현실을 좌시하거나 수수방관하지 않고 시민의 양심과 권리의식에 입각하여 사실 그대로를 성실하게 신고, 고발하는 것은 우리사회발전을 위해서도 조장되어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적으로 「명백한 사실」을 근거로 한 경우에 한한다. 거짓이거나 풍문 혹은 추측에 근거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더우기 거기에 개인감정이나 경쟁심 등 올바르지 못한 심성이 개입된 경우는 그 신고와 고발은 무의미하게 된다. 단순히 무의미 할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또 하나의 부정이요 비리요 불법이 아닐 수 없다.
건전한 사회질서유지와 상호 신뢰하는 사회기풍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역도 된다. 이것은 공명과 공정을 추구하는 국민적 소망과 합의에도 역행하는 행위다.
그 점에서 검찰이 최근 무고와 중상모략행위에 대한 엄단 방침을 밝히면서 아울러 건전한 내용을 고발하는 사람을 극력 보호할 종합대책을 각급 검찰에 시달한 것은 당연한 조처다. 또 불신풍조 속에 시들어가고 있는 오늘의 우리사회현실을 돌아볼 때 시의 적절하다고도 하겠다.
그러나 돌아보면 검찰의 이번 조처가 유달리 새로운 건 아니다. 70년대에도 국민화합과 사회안정을 저해하는 무고의 폐풍에 대한 당국의 우려가 몇 번이고 되풀이되었고 제5공화국 발족 이후에도 그것은 거듭 강조되고 있다.
무고와 모략의 실례들에서도 그 경향이 얼마나 광범하고 불건전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75년에 서울동대문구청의 조사에선 시민봉사실에 접수된 건의, 탄원, 진정의 65%가 사실과 다르거나 행정영역을 넘은 일반민사문제로 밝혀졌다.
이른바 「서정쇄신정책」을 폈던 76년에 감찰당국에 접수된 각종투서는 2개월 반 사이에 무려 1천8백건이었고 그중 90%이상이 무고·모함의 익명 투서였다.
80년에 소비자고발센터에선 무려 3천건의 고발신고가 있었으나 그 대부분이 사소한 불만을 토로하든가 억지투정인 경우였다.
사정당국에 신고, 고발되는 경우도 별로 다를 바 없다. 80%는 무고요 모략이었다.
그 때문에 정부는 그 동안 부조리 제거, 서정쇄신과 같은 국정목표에 편승한 무고·모략의 「역부조리」현상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누차 경고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당국의 경고는 신통한 묘방이 되지 못하고 있다. 법무부의 이번 조처는 그 명백한 반증이기도 하다.
남을 공연히 미워하고 함정에 몰아넣으려는 무고와 모략의 풍조는 검찰의 지적처럼 실로 우려할만한 사태이며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불신풍조」의 병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 같은 불신풍조의 만연은 결국 정부가 추진하는 정의사회의 구현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정직하고 건실한 생활윤리를 바탕으로 도덕적 사회를 건설한다는 국민적 희망도 성취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사회의 불신풍조를 조장하고 사회구성원간의 상호 음해 행태의 대표적 사례가 되고있는 모함과 무고의 타기할 폐습은 철저히 뿌리 뽑혀야겠다.
그 점에서 이번 검찰의 무고·중상모략 엄단방침은 소신을 가지고 끈질기게 추진되어야할 것이다.
고소·탄원상습자의 리스트를 만들어 단속자료로 삼는다든가, 확신 없는 사실을 신고하는 자를 무고죄로 엄단한다는 구체적 지침도 철저히 지켜져야겠다.
그것은 단지 법의 올바른 집행을 위해서라기보다도 우리사회의 도덕적 정당성을 여기서부터 가다듬는다는 사명의식에서 강력히 추진되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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