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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차림 성모 마리아상 탄생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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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오씨가 조각한 마리아상. [연합]

"성모님과 예수가 이 땅에 오셨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오랫동안 생각하면서 돌을 쪼았습니다."

조각가 오채현(43)씨는 '한복 차림의 성모 마리아'가 탄생한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 여름, 성염 주 교황청 한국 대사가 바티칸에 세워질 성모자상을 부탁했을 때 그는 세계 각지에서 찾아올 신자 누가 보아도 한국에서 온 성상임을 알 수 있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1년 가까이 매달려 완성한 작품을 바티칸에 보낸 지 한 달, 현지에서 들려오는 평가가 좋아서 그는 뿌듯하다.

"제 고향인 경주에서 캔 자연석 화강암을 사용해 석불 느낌이 나죠. 벌거벗은 아기 예수를 업고 물동이를 인 마리아는 옛날 우리 어머니처럼 가슴이 좀 드러나게 했어요. 일에 쫓겨 종종걸음치는 어머니면서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죠. 바티칸에서는 살이 드러난 성모상이 파격이겠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성모 마리아니 주체성이 있어야죠."

오씨는 종교에 벽을 두지 않고 작품을 만든다. 2001년에는 경기도 용인 미리내 성지 안에 성모자상을 세웠다. 2002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는 조계사에서 불상 전시회를 열었다. 어린 시절에 뛰놀던 경주 남산의 돌부처가 그가 꿈꾸는 성스러운 모습의 원형이다. 세상을 다 품고 울듯이 웃고 있는 염화미소를 되살리려 그는 오늘도 돌과 대화한다.

"제막식은 10월 4일 '한국의 날'에 맞춰 합니다. 일찌감치 초대받았으니 올 가을 바티칸으로 날아가 서구인들이 제작한 성상을 실컷 볼 작정입니다. 널리 보고 오면 더 토착화한 성상이 나오지 않을까요."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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