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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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 나라 은행은 우선 그 허위대가 하나의 특색이다. 으리 번쩍한 빌딩은 거의 예외 없이 은행의 상표처럼 되어 있다.
요즘은 창구를 여행원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그 자리엔 대학을 갓 졸업한 댄디 청년들이 앉아 있었다.
흰 와이셔츠에 깍듯이 넥타이률 매고 있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은행원임을 가려 낼 수 있었다. 한 시절 샐러리맨들의 선망이기도 했다.
그러나 「뱅크」라는 말의 원 뜻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중세의 세계무역은 이탈리아의 항구가 주무대였다. 따라서 이런 항구엔 으례 환전소가 있어야했다. 말이 환전소지, 실제로는 데스크 하나에 회계원 한 명이 앉아있는 정도였던가 보다. 그것을 이탈리아어로 「방카」(banca)라고 했다. 우리말로 「대」라는 뜻이다. 「뱅크」라는 말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서양엔 아직도 그런 관습이 남아 있다. 유명 도시엔 마치 버스표 파는 곳 같은데서 환전을 해 준다. 은행도 허위대보다는 실속 위주다. 은행의 일선 점포라니 꼭 관광 안내소 같은 인상이다. 밝고 경쾌한 무드의 분위기에 데스크(대) 앞에는 안락한 의자가 있어서 고객들은 마음 편하게 앉아 상담을 한다.
정작 서있는 쪽은 창구의 행원이다. 그만큼 기동력이 높다고나 할까.
물론 현대 사회의 은행을 보따리 장사(?) 시절의 중세와 비교할 수는 없다. 생산업의 발전에 따라 거대 산업자본의 요구는 필연적이며, 여기에 맞추어 은행의 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다.
경영대에서 배우는 「상품학」교과서엔 은행의 문이 어떠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은행의 문은 육중하고 커야, 그 문을 밀고 들어서는 고객의 마음에 든든한 신뢰감을 준다는 것이다.
하긴 은행문이 사립문처럼 팔랑거린다면 어딘지 모르게 불안감을 줄 것도 같다. 은행은 시속에 따라 덩치며, 하는 일은 달라졌지만 신용의 수수와 창출이라는 면에선 변함이 없다.
오히려 그런 업무는 더 세련되고 더 과중해지고 있다. 구미에선 목사의 신망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은행의 신용이 없으면 하루도 못 사는 사회가 되어 있다.
은행이 고객의 신용을 따지는 것은 은행 자신이 스스로 신용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얘기가 있다. 미국의 「잭슨」대통령은 연방은행의 정부 예금 인출 문제로 재무간판을 세 번이나 연거푸 갈아치운 일이 있었다. 첫 번째 대상이 되었던 「매클레인」장관은 정부 예금을 인출하라는 대통령의 명령을 단호하게 『노!』했다. 그의 후임도 마찬가지였다.
은행의 생명은 호화판 빌딩도, 산적한 돈도 아니다. 신용 하나다. 수목이 물을 필요로 하듯 은행은 신용이 없으면 고목이나 다름없다.
요즘 우리 사회의 일부 은행은 도대체 은행이 누구 때문에 있으며 은행의 생명력이 무엇인지도 분간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우선 제자리 찾기 운동이라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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