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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는 월요일] 문화센터 2014 트렌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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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로 유명한 스위스 출신 작가 알랭 드 보통에게 직접 듣는 강의가 단돈 1000원. 출판사의 이벤트나 대학 초청 강의 얘기가 아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문화센터가 내년 1월 17일에 준비한 강좌다. 신세계 포인트 카드 회원 중 선착순 신청자 150명이 대상이다. 주제는 ‘보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공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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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그램을 기획한 신세계백화점 문화팀 심지선씨는 “명사의 경우 강의료를 많이 지급한다고 해서 섭외되는 게 아니다. 백화점의 브랜드 파워를 내세워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씨는 4년 전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같은 무대에 섰던 점을 내세워 알랭 드 보통을 섭외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명사 섭외는 곧 백화점의 자존심이나 마찬가지여서 백화점 간의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백화점 간 자존심 대결의 혜택을 톡톡히 보는 이들이 문화센터 이용자다. TV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보기 힘든 명사의 강의나 유명 강사의 수업을 저렴한 가격으로 누릴 수 있다. 게다가 문화센터에는 최신 트렌드의 강좌가 집약돼 있다. 현대백화점 본점 문화센터의 이혜옥 팀장은 “백화점의 주요 고객층이 트렌드 변화에 민감한 이들이기 때문에 트렌드에 맞춰 발 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신규 고객이 바로 등을 돌린다”고 말했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과 이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의 문화센터 강좌를 통해 최신 트렌드를 분석해봤다.

 문화센터 강좌에서 올해 유독 눈에 띄는 키워드는 ‘아빠’였다. ‘문센녀(문화센터에 다니는 여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업 주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문화센터에 남성 참여 강좌 수와 참여 인원이 부쩍 늘었다. 아빠와 아이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강좌나 예비 아빠 프로그램, 부부가 함께하는 순산 요가 등의 육아 준비 프로그램들이다.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해 겨울학기 기준 605개였던 아빠 또는 예비 아빠를 위한 강좌가 올겨울에는 780개로 늘어났다. 홈플러스 이원경 문화센터팀장 역시 “아빠가 육아에 참여하는 TV 프로그램의 영향과 어린 시절 아빠와의 유대감 형성이 사회성을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2년 새 관련 강좌가 50%이상 증가했다”고 말했다.

아빠들은 대부분 아내의 권유로 강좌를 듣기 시작했다가 자발적으로 꾸준히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강원호(38·음악가)씨는 아들 건(3)군과 함께 올 초부터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홈플러스의 문화센터에서 색종이 공작교실을 듣고 만족해 컬러클레이 만들기 수업에도 참여했다. 강씨는 “앞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아이가 어떤 것에 흥미를 느끼는지 살펴보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문학과 명사 강좌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선 알랭 드 보통(왼쪽), ‘미생’ 원작자 윤태호씨 등 유명 인사의 강좌를 들을 수 있다.

 어려워진 경제 사정을 반영하듯 실용적인 목적의 강좌도 인기다. 취미생활이 아닌 창업이나 재취업을 위한 목적으로 문화센터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마트에 따르면 북아트·종이접기·토털공예 자격증 등 방과후 지도사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증·지도자 과정 관련 겨울학기 과목은 지난해 240개에서 올해 403개로 늘었다. 학원강사인 이연숙(47·여)씨는 12월 커피숍 창업을 앞두고 가을학기부터 롯데백화점 본점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스페셜티 창업자 과정을 듣고 있다.

그는 퇴직 이후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 커피숍 창업을 결심하고 문화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문화센터는 검증된 강사를 쓰고 추가로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데다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데도 유용하다”며 만족해했다. 아파트·토지 등 부동산 투자 요령부터 펀드 등 투자 상품에 대한 경제 관련 강의나 셀프 페인팅·홈헤어컷 등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해결하는 강좌도 늘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겨울학기 313개였던 이마트의 건강 관련 강좌는 올겨울 494개로 늘었다. 특히 서울대 김난도(소비자학) 교수가 올해 트렌드로 꼽은 ‘초니치(Ultra-niches·틈새 중의 틈새)’와 ‘하이브리드 패치워크(Hybrid Patchworks)’가 건강 관련 강좌에도 반영됐다. 패치워크는 다채로운 헝겊 조각을 이어 붙인 공예품을 뜻하는 말로 다양한 산업이나 서로 다른 특성이 섞이는 것을 가리킨다. 이에 따라 건강 관련 강좌는 세분화되거나 서로 다른 강좌가 융합되는 형태가 인기를 끌었다. 홈플러스 이 팀장은 “경추 베개와 벨트 활용 체형교정 운동, 페이스 요가, 산전·산후 요가 등 대상이나 부위, 기구에 따라 세분화된 강좌에 수강생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발레와 요가를 접목한 ‘보디 리스토어’나 필라테스와 발레를 접목시킨 ‘테라 발레’ 등 두 가지 이상의 운동이 결합된 강좌 역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인문학 강좌 역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분야다. 현대백화점 소순일 콘텐트 팀장은 “경기가 나빠지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문학·철학·역사학·예술 등의 인문학을 통해 만족감을 얻고 위로를 받으려는 트렌드가 강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백화점 문화센터에선 위대한 개츠비, 레미제라블, 죄와 벌 등 해외 고전소설을 읽는 ‘고전 속 불멸의 명문장’ 등의 인문학 강좌 수를 전년 대비 10% 정도 늘렸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2500년의 역사, 고대 그리스와 로마’ ‘동양적 지혜와 여유로운 삶 『장자』’ 등을 준비했다. 1000원 정도의 비용으로 평소에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인사들을 만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것도 문화센터만의 강점이다. 롯데백화점은 35주년 기념으로 35인의 명사를 섭외했다. 최근 화제를 낳고 있는 드라마 ‘미생’의 원작자인 윤태호 작가, 프로파일러 표창원, JTBC ‘비정상회담’의 장위안 등이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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