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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서 굴러다니는 보조금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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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호 05면

중앙포토

중앙SUNDAY가 입수한 2004~2013년 정당 국고보조금 불법 사용내역(선관위 작성)을 보면 복마전이 따로 없다. 정당들은 정책개발이나 경상보조에 사용해야 할 국고보조금을 다른 용도로 썼다. 열린우리당·민주당은 2004년 1억4461만원을 비롯해 세 차례에 걸쳐 정책개발비와 경상보조금 1억5200여만원을 인건비 등으로 돌려 썼다. 법정한도를 넘어 유급 직원들을 고용하고, 이들의 봉급으로 국고보조금 3억여원을 세 차례에 걸쳐 쓰기도 했다. 한나라당·새누리당 역시 초과 고용한 유급 직원 인건비로 1억934만원(2004년)을 전용했다. 또 네 차례에 걸쳐 영수증을 허위 보고해 1억2000여만원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정당보조금 ‘복마전’ 실태 들어봤더니

선관위 개선 요구 정치권서 뭉개
여야는 여성 정치발전에 써야 할 국고보조금도 전용했다. 2010~2011년 민주당이 두 차례(1458만원), 한나라당이 한 차례(1034만원) 전용한 사실이 적발돼 이듬해 전용액의 배에 해당하는 국고보조금을 삭감당했다.

정당들이 술값을 ‘정책개발비’로 둔갑시켜 온 관행도 드러났다. 18대 국회에서 활동한 창조한국당은 2009년과 2011년 심야시간대에 유흥업소와 맥줏집에서 회식비 명목으로 145만원을 지불한 뒤 다른 용도로 썼다고 허위로 보고했다가 적발됐다.

정당들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매 분기 말 은행 계좌로 국고보조금을 받는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해 새누리당은 173억5842만원, 새정치민주연합(당시 민주당)은 158억342만원을 받았다. 통합진보당은 27억3829만원, 정의당도 20억400만원의 국고보조금을 탔다.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정당 국고보조금은 지급 당시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에 총액의 50%를 균등하게 지급하고 5~20석 미만 정당엔 총액의 5%씩을 지급한다. 선관위는 홈페이지에 2000년부터 올해까지 정당들에 지급한 국고보조금의 총액만 공개하고 구체적 사용내역은 밝히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도 국고보조금 사용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의당만 당비를 낸 당원에 한해 공개하고 있을 뿐이다. 일반인이 사용내역을 알고 싶으면 선관위에 정보 공개 청구를 해야 한다. 절차가 복잡하고 공개까지 걸리는 기간도 길어 사회단체가 아니면 나서기 힘들다.

선관위도 이런 문제점을 인정해 “(국고보조금을 포함한) 정당의 정치자금 수입·지출 총괄표와 지출 증빙서류 명세서를 선관위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정치자금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세 차례 의견을 냈다. 하지만 정치권의 외면으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

국고보조금은 정치자금법에 따라 30%는 정책연구소(정책개발비)에 배정해야 한다. 또 여성 정치발전과 지방 시·도당에 각각 10%씩 사용해야 한다. 남은 돈으로만 인건비·사무비·조직활동비를 충당할 수 있다. 그러나 국고보조금을 실제 어디에 쓰는지는 사실상 당 마음대로라는 게 새정치연합 당원 이충렬씨(사진)의 증언이다.

정당의 모든 절차 당 재정에 접근 차단
-우리 정당의 재정 운용 투명성은 어느 정도인가.
“국내의 모든 집단이 예산 편성과 집행, 결산과 감사 절차를 거치는데도 정당만 전무하다. 또 정당의 모든 절차가 당 재정에 대한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소규모 개인 기업도 이렇게는 안 한다. 기업은 홈페이지에 대차대조표 등 회계자료를 공개하는데 정당 홈페이지엔 재정항목이 아예 없다. 이러니 ‘정당에서 굴러다니는 보조금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란 말이 나온다.”

-국고보조금 불법 사용내역을 보면 정책개발비를 인건비 등에 전용하는 경우가 많다.
“야당은 분당과 통합을 반복하다 보니 대표가 바뀔 때마다 조직에 자기 사람을 심는다. 자연히 인건비 부담이 커진다. 당직자가 100명이라면 월급을 200만원만 줘도 연간 24억원이 들어간다. 매년 수십억원씩 책정되는 정책개발비(야당은 민주정책연구원 지원비)를 전용하고 싶은 유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정책개발비가 수억원씩 인건비로 전용된다는 소문이 당내에 파다했다. 그 밖에 국고보조금은 당 지도부의 회식비나 화환 값, 당직자들의 생활비 등으로 전용되기 일쑤다. 대표가 바뀔 때마다 꽃가게 운명이 바뀐다는 말도 있다.”

-불투명한 재정으로 인한 문제점은 또 무엇이 있나.
“야당은 여론조사 같은 프로젝트를 위해 업체를 입찰하는데, 재정 감시 기능이 없다시피 하니 업체 선정 과정도 전혀 알 수 없다. 특정업체가 선정되면 뒷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과거 당의 중진 의원이 선거 직전 인척이 운영하는 업체에 여론조사를 전담시켰다. 여론조사 결과가 경선에 반영되니 어마어마한 공천헌금이 그 업체를 통해 해당 의원에게 들어갔을 거란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불투명한 재정구조 때문에 진위를 파악할 수 없고 불신만 쌓이는 게 야당의 현실이다.”

-사실이라면 큰 문제다.
“이뿐 아니다. 대선 때 전국 단위로 수백 대씩 빌리는 유세 차량을 놓고도 의혹이 불거지지만 건드릴 수 없다. 일례로 한 달간 차량을 빌리는 비용이 업체마다 2~3배씩 차이 난다. 선정 과정에서 뒷돈이 오갔다는 의심을 살 대목이다. 감사원이 나서 새누리당과 비교해 보면 결론이 금방 나올 수 있는데, 이걸 안 한다.”

국민의 세금엔 ‘야당 탄압’ 논리 안 맞아
-당 재정을 관리하는 이는 누군가.
“당 재정은 대표와 총무국장, 사실상 이 2명만 알 수 있다. 야당은 대표의 평균 수명이 6개월~1년 수준이니 그보다 오래 재직하는 총무국장이 재정을 제일 잘 알 거다. 당 대표가 전권을 쥐다 보니 재정이 방만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지난 여름 물러난 김한길 전 대표는 재임 시절 황당한 지출을 줄이는 개혁을 단행해 이월금을 많이 남겼다더라.”

-과거 재정 개혁을 건의한 적은 없나.
“이번 회견을 하기에 앞서 문재인 의원에게 ‘국고보조금 사용내역을 공개하고 감사를 받겠다고 선언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는데 아직 답변을 못 받았다. 이 문제는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가 ‘5년에 한 번씩 법에서 정한 감사를 받겠다’고 선언하고 명문화하는 게 좋다고 본다. 그러면 여야는 매년 국고보조금 사용내역을 선관위에 보고하고, 감사원은 5년마다 실사하면 된다.”

-감사원이 정당을 감사하면 야당 탄압 논란을 부를 수 있지 않나.
“다른 정치자금은 몰라도 국민의 세금인 국고보조금에는 그런 변명을 적용할 수 없다. 독재 시절 민주 대 반민주 논리로 당의 비리를 감쌀 때는 지났다. 그 시절 투옥을 불사하는 용기로 위기를 돌파했던 것처럼 이젠 국고보조금을 깨끗하게 쓰는 것으로 돌파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2006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자당 의원 2명이 공천헌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자 ‘야당 탄압’이란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노무현 정부가 지휘하는 검찰에 수사를 맡겼다. 지금 야당도 이래야 한다.”

-당내 반발은 없나.
“당내 반응은 ‘조용히 지나가지 왜 사고 치나’ ‘저 사람 홀로 떠들어봤자 그냥 지나갈 것’이었다. 반면 당 밖의 사람들은 긍정적 반응을 보이며 격려하더라. 이러니 야당이 야바위판이란 비난을 받는 것이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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