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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반드시 회담 성사를” 후쿠다·스가·야치 총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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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달 시진핑 주석(오른쪽)과 만난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 [로이터=뉴스1]

중·일 정상회담이 막판에 성사된 것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집요한 노력과 함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고도의 외교술이 결합된 결과다.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의 동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외교적 돌파구가 필요했고, 시 주석은 정상회담에 대해 막판까지 확답하지 않음으로써 아베 총리로부터 “야스쿠니(靖國)를 참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얻어 냈다.

 아베 총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자리에서 정상회담이 무산될 경우 당분간 중국과는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에 회담을 성사시키라”는 엄명을 내렸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총사령탑이 됐고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장이 이를 거들었다. 중국과의 공식 메신저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가 맡았다. 공식 외교라인인 외무성은 배제됐다.

 사실상 ‘정상회담 특사’로 지난 7월 말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을 만난 후쿠다 전 총리에게 중국이 요구한 것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중단’이었다. 일본의 한 고위 소식통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는 ‘서로 다른 견해가 존재한다’는 것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절충됐지만 중국의 야스쿠니 참배 중단 요구는 매우 강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중국의 강경한 반응을 전해 들은 아베 총리는 ‘확실히 그렇게(야스쿠니 참배 중단을) 전해도 된다’고 응했다”며 “이를 후쿠다 전 총리가 다시 지난달 말 중국 측에 전달하면서 정상회담의 큰 틀은 굳어졌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시 주석 또한 외교부 등 공식 외교 라인보다는 비선 라인을 주로 가동했다고 한다. 지난 4월 일본을 방문해 아베 총리와 스가 관방장관을 극비리에 만난 후야오방(胡耀邦)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장남 후더핑(胡德平) 전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양국의 합의문 중 ‘약간의 인식의 일치를 봤다’는 것도 서로가 부담을 덜 지게되는 교묘한 표현이 됐다. 중국으로선 아베가 야스쿠니 참배 중단 약속을 어길 경우의 국내적 부담, 일본으로선 야스쿠니 참배와 중·일 정상회담을 ‘거래’했다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외교소식통은 “시진핑 주석과 아베 총리의 만남은 30분 이상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격식을 갖춘 회담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중·일 정상회담 성사 과정은 2006년 9월 ‘아베 1기 정권’ 출범 직후와 매우 흡사하다. 당시 아베는 취임 직후 전임자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재임 중 5년간 매년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바람에 중·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것을 감안, “나는 야스쿠니에 간다, 안 간다는 입장 표명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중국 측에 전달해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주석을 만날 수 있었다.

도쿄=김현기·이정헌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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