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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칼럼

중국의 미국 기업 사들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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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국의 컴퓨터 회사 레노보 그룹이 IBM의 개인용 컴퓨터 부문을 사들였다는 소식에 미국은 충격을 받았다. 2000년까지 미국 기업에 영국이 2300억 달러, 일본이 1590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중국이 투자한 돈은 4억 달러도 안 된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미국을 상징하는 브랜드 중 하나인 IBM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기습에 미국 정치인들은 크게 당황한 것이다.

이는 마치 1980년대 소니의 컬럼비아 영화사 인수, 미쓰비시 부동산의 록펠러 센터 매입과 함께 페블비치 골프코스가 일본 투자자에게 팔렸던 때처럼 일본 기업이 미국을 사들이던 시절을 연상케 한다. 조지 메이슨 대학의 수전 톨친은 '미국 주식회사 매입하기'라는 책에서 "사람들은 '로케츠(록펠러 센터의 정기 공연단)도 기모노를 입어야 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했다"고 썼다.

중국의 가전업체 하이얼도 최근 미국의 상징적 가전업체인 메이택을 노리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셰브론과 165억 달러에 매각을 합의했던 미국 석유회사 유노칼을 185억 달러에 사들이겠다는 중국 3위의 석유 생산업체 중국 국영 해양석유총공사(CNOOC)의 제안은 이 같은 기류를 대변하는 것에 불과하다.

중국은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미국 국채를 많이 보유한 나라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중국이 막대한 달러를 뿌리며 미국에서 유력한 '주주'로 행세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듯하다. 그 이유가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미국의 경제적 우월함이 도전받는다는 사실 때문인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미국의 경제적 영토를 감안할 때 최근 중국의 진출은 작은 '교두보'를 마련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미국인들이 크게 우려하게 된 것은 의회와 행정부에서 촉발한 측면이 있다. 미국 상원이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보호관세 부과를 논의하고, 국방부가 중국을 잠재적 적대세력으로 평가한 보고서를 냈기 때문이다. 특히 국방부 보고서는 중국 지도자들이 가시적인 외부 위협이 없는 상황에서도 군사력을 확장하려 하는 데다 국방 예산의 실제 규모 등 많은 내용을 숨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여러 요인들로 현재 양국 관계가 비정상적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은 다른 나라에 대해 즉흥적이거나 이기적으로 반응해선 안 된다. 항상 성숙함과 절제를 통해 세계를 이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중국이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인 데다, 대만 문제를 놓고는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국이 역사적 피해 의식과 혁명 이념을 버리고 점진적인 진전을 통해 보다 자신 있고, 민주적이며, 건설적인 나라로 떠오른다는 희망의 시나리오도 있다.

물론 이런 희망이 저절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희망이 보인다면 미국 관리들은 중국을 위협으로 간주해 왔던 기존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런 조짐을 기다리기 위해선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중국이 세계 무대에서 일정 역할을 하게 해야 하고 용기를 북돋워줘야 한다. 아직까지는 중국에 대한 '견고한 우애'가 훼손되지는 않았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가 중국건설은행 지분을 25억 달러에 인수하는 협상을 벌이지만 미국 정계가 아무런 반대를 하지 않는 것처럼 중국도 미국을 포함한 외국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오랜 속담을 지금 상황에 맞게 다시 표현하고 싶다. '미국 암거위에게 먹이가 될 수 있는 것은 중국 수거위에게도 먹이가 된다.' 암거위가 생각하기에 수거위가 점점 안하무인이 되어 가더라도 말이다.

오빌 셸 UC버클리 언론대학장
정리=이충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