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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4. 땡볕 <19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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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영규는 대꾸없이 옷을 입었다. 그리고 차츰 변해 가는 숨소리와 주고받는 키득거리는 소리들을 한 귀로 들으면서 담배를 피웠다. 영규는 냉정했다. 여자 하나에 삼십씩 육십 달러에다 입욕비 십 달러, 모두 칠십 달러에 지옥의 쾌락을 샀다. 여자들은 놈의 진을 뽑아 곤죽을 만들 것이다. 레온의 보급창고 속의 물건들이 이 지옥을 화려하게 번성시켰듯이. 영규는 그랜드호텔의 한 작은 홀에서 행정요원들과 함께 토요일 심야마다 보던 포르노 필름들을 연상했다. 끊임없는 허기, 궁핍, 그리고 대리석 같은 물화(物化)의 반복. 영규는 어느날 근무시간에 이 칸막이 안에 찾아왔던 적이 있었다. 영규는 벌레처럼 꿈틀대며 흘러가던 화면 속의 정액을 생각했다. 그의 몸은 허벅지 사이에 무심하게 늘어져 있었다. 판초에 쓸어담아 던지던 수많은 사지와 육괴(肉塊), 핏덩이와 그 냄새, 부패한 상처, 암갈색의 부어오른 살, 번지는 찐득한 물기, 오글거리는 구더기들, 도마뱀의 떼, 이곳저곳 떨어져 나가고 꿰어진 악마 같은 구멍들 속에서 수없이 드나들며……. 우리들의 기계, 우리들의 독약, 우리들의 무기, 우리들 자신의 절망, 지옥은 모든 우리를 포함한 우리가 지어낸 물건들의 광란하는 축제다. 마셔요 마셔요, 가슴이 뚫려요, 껍질을 벗겨서 말랑할 때 잡수셔요, 쫄깃쫄깃 향기롭게 짜릿하게 씹어요 씹어요, 빨아요 빨아요 깊이 넣고 빨아요, 깨끗한 침실에서 만나요, 우아한 디자인과 고상한 장식, 포근한 감촉, 정력 감퇴에, 소화가 안 될 때, 젊어져요, 싱싱해져요, 잠이 와요, 증권은 보험은 저축은 투자는 돈이 쏟아져요, 소총 기관총 로켓 대포 네이팜 헬리콥터 탱크 폭격기 죽여요 죽여줘요. 지아이 머니 받아 가지고 홀 하우스로 달린다, 갈보야 손님 왔다, 네 방으로 모셔라, 앉으세요 누우세요 벗으세요 하세요 벌리세요 박으세요 빨으세요 돈 내세요.

-이 무섭고 피에 젖은 전쟁의 연막이 사라질 때 우리는 재정이 아직도 확고하게 서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새로운 장소에 투하될 돈을 발견할 것이며 무너지고 황폐한 세계를 재건할 돈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공장의 불을 다시 밝게 타오르게 하여 지구를 평화의 승리로써 밝혀 줄 달러를 발견할 것이다.

-저급 유흥장과 지아이 바의 지역 가운데 세워진 뱅크 오브 아메리카와 체이스 맨해튼 뱅크의 사이공 지점은 마치 화강암 사질 토양 속의 현대적인 숲같이 보입니다. 그 은행은 전장이라는 조건에 맞춰 특별히 세워진 것입니다. 즉 창문은 방탄유리로 되어 있고 벽은 폭탄과 박격포 공격에 견디도록 설계 되었습니다. 베트남에서의 미국의 권위가 없다면 아마도 어떠한 미국의 은행도 그곳에 서 있지 못할 것입니다. 미국의 돈이 있는 어떤 나라든지 그 경제는 점차 미국 지향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영규는 지갑을 꺼냈다. 그는 붉은 색의 십 달러짜리 군표를 꺼내어 세었다. 그는 육십 달러를 접어서 여자들이 쉽게 찾아 챙길 수 있도록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무기의 그늘'은 아직 전쟁이 진행 중이던 1974년에 처음 연재가 시작되었다가 끊어지고 세 번이나 발표할 지면을 옮겨다니며 십 년이 지나서 1980년대 중반에 겨우 끝마칠 수 있었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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