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는 말의 빛깔·쓰임 좋으나 너무 탐미적|밝은 이미지『새벽 강』, 공간 한정돼 기복 잃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전통이란 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온 것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뜻이 아니고 늘 새롭게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조는 7백여년을 두고 어느 시대에나 새로운 노래(시)가 될 수 있었기에 오늘을 맞이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이 겨레가 있는 동안 새로운 시로서 함께 하리라는 것도 시조의 무한한 가능성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연가』는 시인이면 누구나 평생을 두고 거듭 쓰게되는<사람>의 주제를 거침없이 구사하고 있다. 거침없다고 한 것은 그만큼 말의 빛깔과 그 쓰임새를 익숙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탐미에 빠진 것 말고는 이쯤이면 가작이 아닐 수 없다.
『바다 송』은 지은이가 남달리 시조에 열중하고 있음이 남을 통해 볼 수 있으나<하릿한><끈끈한><깨어진><허기진>같은 실속없는 형용사에 매달리는 것이 아직도 덜 다듬어진 부분임을 지적하고 싶다.
『새벽 강』은 시의 이미지가 맑고 깨끗한 느낌을 주지만 너무 한정된 공간의 제자리걸음이어서 시의 기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조금 시야를 넓혀 갖도록.
『우리 다시 만나면』은 소박한 마음으로<만남>의 아름다움을 읊고 있다.
굳이 사람·아픔·슬픔 같은 낱말을 쓰지 않았기에 오히려 깊고 그윽한 석이 살아나고 있다.
『새』 는 시조의 형식은 밟고 있으나 그 율격은 전혀 새로운 시도로 퉁겨 나가고 있다. 이러한 시험이 자기세계를 구축할 때 시조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남해에서』 는 단수에서 이 시를 끝내고 있는데 어쩐지 시를 쓰다 만 느낌을 주고 있다. 넓은 소재를 잡고 쉽게 자리를 걷어올린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까닭은 연작과 단형이 갖는 구성상의 차이점을 지은이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렵』은 시골의 한 풍경을 매우 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반성할 것은 그리는 것 속에 어떤 작의가 더 숨어있어야 할 것 같다.
『어린이날』은 머리로 쓴 것이라기보다 자기 체험을 그대로 드러낸 생활시의 채취가 강한 작품이다. 그러나 시가 바둑알처럼 굳어 있는게 흠이다. 이근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