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군 생활 이렇게 훼손하나 … 장관 만난 뒤 전역 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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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기도원이 없었으면 내 얼굴도, 목소리도 듣지 못했을 거여~.”

 3일 오전 신현돈(59) 전 1군사령관의 걸쭉한 충청도 사투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렀다. 그의 고향은 충북 괴산이다. 기도원에서 마음을 다스렸다는 말에 억울함이 전달돼 왔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휘하에 13만여 명의 병력을 거느린 육군 대장이었다. 음주 추태 의혹사건으로 동부전선 최전방을 책임지던 야전사령관에서 하루아침에 ‘야인’이 된 신 전 사령관을 지난달 31일과 3일 두 차례 인터뷰했다. 국방부가 발표한 음주 추태 의혹이 대부분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진 뒤다.

 - 국방부 재조사 결과(9월 11~12일)를 보면 자진전역할 사안은 아니던데 왜 9월 2일 자진전역했나.

 “의혹이 불거졌는데 정치권과 언론의 중심에 서면 13만 부하를 제대로 지휘할 수 있겠나. 야인으로 돌아가 진상규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대장씩이나 돼서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 스스로 결정한 건가.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만나 상의했다. ‘사령관 직책을 수행하면서 진상을 밝히는 건 군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얘기를 나눴다. 그만두겠다고 했다.”

 - 자진전역을 권고받았나.

 “(망설이다) 장관을 만났다는 것 이상은 얘기하고 싶지 않다. 군과 국방부에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신 전 사령관의 입에서 ‘전역을 권고받았다’는 취지의 얘기가 나온 건 처음이다. 자의 반 타의 반 전역이었다는 의미다. 지난달 31일 인터뷰 전엔 “긴 치심(治心·마음을 다스린다는 뜻) 여행을 마치고 옛 전우에게 연락해 봅니다”로 시작하는 그의 e메일을 받았다. 음주는 했으나 추태를 부리지 않았고, 육군본부에 보고를 하고 모교 청주고에 안보강연을 갔다 왔기 때문에 경질성 자진전역의 이유가 됐던 근무지 이탈도 사실이 아니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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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시엔 왜 설명하지 않았나.

 “그냥 덮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해도 너무하더라. 파렴치범으로 만들었다. 40년 군 생활을 이렇게 훼손하나. 고민고민하다 개인 자격으로 언론에 잘못된 부분을 정정해 달라는 요구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게 군과 장성들의 명예를 되살리는 길이라 생각했다. 강연 일정을 조정했어야 했다. 당시의 판단 실수가 평생 아플 거다.”

 그러면서 신 전 사령관은 “난 뼛속까지 군인이여. 이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새 출발을 할껴”라며 다시 경기도 파주의 기도원으로 떠나겠다고 했다.

 ◆한민구,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은 맞다”=그러나 논란이 확산되자 한민구 장관은 이날 기자실을 찾아 “대기태세가 요구되는 기간에 근무지를 떠나 모교 방문 행사를 했다는 것은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었다는 평가를 했다”며 “음주행위가 과도했음은 틀림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 당일 권오성 당시 육군총장이 위치 확인을 하기 위해 전화를 했을 때도 (신 전 사령관은) 취한 목소리로 받았다”고도 했다.

 전역 결정엔 외부의 압력이나 권유가 없었으며 신 전 사령관이 직접 판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장관은 “본인이 전역을 하는 게 맞겠다고 해서 승인한 것”이라며 “신 장군은 자신과 군의 명예를 생각해 전역 결심을 한 것이고, 나는 그게 정말 잘하는 처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신 전 사령관의 당시 행위가) 전역 사유냐 아니냐를 두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을 수 있지만 과거 미 해군 참모총장은 월남전 참전 여부를 의심받는 것만으로 권총자살하기도 했다”며 “군인은 그만큼 명예를 중시한다. 신 장군도 그런 측면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장관은 신 전 사령관의 청주고·육사 선배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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