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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 드시던 강화도 새우젓, 배에서 담가 더 맛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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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3일 오후 인천시 강화군 외포항 젓갈수산시장에서 손님들이 새우젓을 구매하고 있다. 새우젓은 순무.인삼과 함께 강화도 대표 특산물로 꼽힌다. [김상선 기자]

지난달 31일 오후 인천시 강화군 내가면 외포항. 고소한 짠내가 진동했다. 냄새를 쫓아 인근 젓갈수산시장으로 들어가자 마주보며 들어선 18개 점포가 진열해 놓은 젓갈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매콤짭조름한 명란젓과 창란젓 등 ‘밥도둑’ 젓갈은 물론 김장용으로 인기가 높은 밴댕이젓과 황석어젓까지 20여 가지 젓갈이 다양하게 놓여 있었다. 제철 수산물인 꽃게와 꼴뚜기·소라·대하도 풍성했지만 사람들은 너도나도 젓갈부터 찾았다. 특히 드럼통 가득 담긴 연분홍 빛의 새우젓에 손님들이 몰렸다.

 “새우젓은 음력 5월에 담그면 오젓, 6월에 담그면 육젓, 말복이 지난 뒤 담근 건 추젓, 겨울 새우젓은 백하젓이라고 하죠. 가장 맛있는 새우젓은 육젓이라는데, 강화도 새우젓의 맛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한번 맛본 사람은 다른 데 새우젓은 입에도 못 대요.”

 이기준(72) 동남2호 사장의 맛깔나는 설명에 여기저기서 “먼저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추젓은 1㎏에 8000원에서 1만원, 육젓은 1㎏에 2만5000원이었다. 새우젓을 담그는 생 젓새우도 “초고추장에 밥과 함께 비벼먹으면 별미”라는 설명과 함께 1㎏당 5000원에 팔렸다.

 가격도 저렴하지만 상인들이 눈대중으로 담아주는 ‘덤’만 해도 정량 수준이다. 여기에 “맛 보라”며 생새우나 각종 젓갈을 챙겨주는 인심도 후하다. 매년 새우젓을 사러 온다는 김미혜(52·여·서울 강남구)씨는 “짭짤하면서도 단맛과 감칠맛이 돌기 때문에 김치뿐 아니라 계란찜이나 국을 끓일 때도 즐겨 쓴다”고 말했다.

 김장철을 맞아 외포항 젓갈수산시장이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평일엔 1000여 명, 주말엔 5000여 명 넘게 찾는다. 이 곳에서 판매하는 새우젓은 강화군 어민들이 직접 잡은 젓새우로 담근 것이다. 서해와 남해안에 사는 2㎝ 남짓한 작은 새우인데, 잡자마자 배 위에서 천일염과 버무려 새우젓을 만든다고 한다. 지난 9월 이후 외포항과 선두항·황산도항 등 10여 곳에서 매일 100여 척이 바다에 나가 조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새우젓이 어느 정도 숙성되면 매주 수요일 오전 경인북부수협 위판장 경매를 통해 전국으로 팔려나간다. 소래포구 등 각종 어시장은 물론 토굴새우젓으로 유명한 충남 광천·강경 새우젓도 여기서 팔려간 것을 사용한다고 한다.

 인기 비결은 ‘맛’이다. 박용오(53) 내가면 어촌계장은 “강화 앞바다는 한강과 임진강에서 흘러나오는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 곳이라 각종 영양소가 풍부해 새우들이 통통하게 잘 자란다”며 “강화도 새우는 특유의 단맛에 껍질도 남해산보다 얇아 그냥 먹어도 맛있다”고 말했다. 이런 점 때문에 강화 새우젓은 예로부터 순무·인삼과 더불어 강화도 대표 특산물로 인기가 높았다. 조선시대에는 한강 물길을 따라 마포나루 등을 통해 임금에게 진상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음식도 있다. ‘젓국갈비’다. 고려 무신정권 시절 강화로 피신을 온 임금에게 대접하기 위해 돼지갈비에 각종 야채와 새우젓 등을 넣어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도 향토음식으로 강화군 곳곳에서 판매된다. 특히 올해는 새우젓을 담그는 젓새우가 대풍이다. 지난달까지 경인북부수협에서 위판된 새우젓은 9017드럼(1드럼=250㎏)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이상 증가했다.

 새우젓의 높은 인기는 외포항에 시장을 만들었다. 새우젓 경매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도매상인들이 위판장 근처에 좌판을 벌였는데 이것이 외포항 젓갈수산시장으로 발전했다. 박용오 어촌계장은 “우리 마을에선 강화산이 아닌 중국산 새우젓을 판매하다가 적발되면 곧장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있다”며 “이 같은 투명성에 힘입어 부산·전남 등 전국에서 주문이 밀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글=최모란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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