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정치구현"의 의사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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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8일의 부분개각은 제5공화국의 탄생 후 8번째의 일.
이번 개각은 구체적으로 문제된 사건을 두고 책임을 물어 자리를 바꾼 첫 케이스였다는 점에서 여타와 성격을 달리한다.
장기에 비유하면 비교적 말을 아껴 쓰는 편인 전두환대통령이 내무장관과 서울시장의 사표를 수리하기로 최종 결심한 것은 28일 상오 현지를 다녀온 이범석 비서실장과 김봉호 정무2수석비서관으로부터 사건진상을 보고받은 직후였던 것같다. 철저한 사후수습책과 정확한 현지조사를 지시한 뒤 그 조사를 토대로 인책을 결심하게 된 것. 이실장의 보고 후 즉각 유창순 총리를 불러 인사를 단행했다. 인사에 잡음을 배제하고 공정을 기하려는 배려 때문에 지난 1·3개각 때와 마찬가지로 발표직전까지 아무도 그 내용을 몰랐다.
사건의 일보를 받은지 만 하루만에 재빨리 문책인사를 단행한 것은 전태통령이 늘 강조해온 책임정치를 행동으로 입증한 것이다.
전대통령은 기회있을 때마다 책임행정을 강조해왔고 최근 지방순시 때는 빠짐없이 봉사행정, 현장확인, 상하의통달, 직업공무원제 확립, 주민신고망 확충을 당부해왔다. 이번 사건에서 보면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전대통령은 이날 개각에 즈음하여 『이번 사건은 공무원의 평시 근무태만이 이유』라고 지적하고 『이는 모두 「책상위 행정」의 본보기』라고 개탄했다. 이날 개각도 이러한 판단에 따라 새시대의 국정지표와 대통령의 시정방침이 관말햅정조직까지 잘 삼투하지 못하고 있는 증좌로 보고 정치적 차원에서 일벌백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전대통령은 개각발표에 앞서 이례적으로 전수석비서관들을 불러 인사내용을 설명한 다음 책임행정의 솔선수범을 당부했다.
전대통령은 지난 1월5일 새내각출범 후 첫 국무회의를 가진 자리에서 『새 내각이 갖추어진 것을 계기로 「책임지는 정부」 「신뢰받는 정부」의 실현을 위해 모든 공직자가 봉사와 신뢰를 행정에 정착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반려되기는 했지만 이번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던 유총리의 태도는 「책임지는 공인」의 귀감으로 평가할만하다.
전대통령은 이날 내각을 대표하여 책임을 지겠다는 유총리의 사표를 반려한 뒤 유총리와 단둘이 오찬을 나누며 경질각료의 후임자와 사후대책에 대해 1시간 반 이상 의견을 나누었다, 이는 내각운영에 대한 전대통령의 새로운 스타일을 과시한 것으로서 국무위원을 대통령에게 제정하고 행정각부를 통할하는 국무총리의 권위와 권능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유총리의 책임지는 공인상과 함께 각 내에서 총리의 권위와 책임을 높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내무장관으로 기용된 노태우장관은 1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 중 세 번째 장관자리를 맡았다. 첫 번째는 안보·외교(정무 제2장관), 두 번째는 신설부처(체육부)라는 점에서 쉽지 않은 자리였지만 이번의 내무부는 조직의 방대성이나 기능의 중요성에 비추어 주목되는 인사가 아닐 수 없다. 노장관의 내무장관기용은 조직이 방대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노후했다는 소리까지 듣는 지방 및 경찰행정의 타성에 긴장감과 활력소를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전대통령과의 관계나 그의 개혁주도 그룹내의 비중에 비추어 노장관의 내무장관기용은 지방·경찰행정풍토에 일대 쇄신을 가져오겠다는 정부의 의지로도 풀이할만하다. 박영수 전서울시장은 지하철사고가 나자 사의를 굳혔다가 최근 매몰된 시체가 전부 발견돼 복구작업이 본격화 된데다가 의령사건이 터지자 『바로 이 때다』란 심경으로 사표를 냈다고 한 당국자는 전했다.
대한체육회부회장·KOC부위원장·올림픽조직위 사무총장(현)을 지낸 이원경씨의 체육부장관 기용이나 서울시부시장을 지낸 김성배 경북지사의 서울시장기용은 그들의 전력에 비추어 봐도 무난한 인사라는 평이다. <김옥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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