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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만원, 몸살 앓는 종합병원-의료계 전문가들이 말하는 현황과 대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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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종합병원 병상이 어디나 할 것 없이 동이 났다.
정작 입원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이 입원실이 없어 번호표를 타고 기다려야 되는 형편이다.
접수창구마다 긴 행렬이고 대기의자마다 만원이다. 종합병원은 환자의 천국인가. 전에는 의사가 없다고 응급환자를 돌려보내는 사태가 있었지만 요즘엔 병실이 없어서 입원환자를 기피하는 경우마저 생겨났다.
입원실하나 얻기 위해 며칠씩이나 기다려야 하는 그런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일반 개인의원이나 작은 병원은 비어있는데도 종합병원만은 만원으로 환자소통이 잘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황>
연세의료원의 경우 병상이용률은 88∼90%. 1천34베드 중 비상용으로 남겨놓은 얼마간을 제외한다면 항상 만원인 셈이다.
1일 외래환자 수는 2천∼2천5백명으로 하루 의사 l인당 평균 40명의 환자를 진료해야만 한다. 하루 평균 3천∼3천5백명이 몰리는 서울대학교병원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원실 역시 특수병실을 제외하고는 항상 꽉 차있는 형편이다.
이밖에도 대부분의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의 병상가동률은 90%선을 넘고있다. 90%라면 특수병실이나 비상용을 제외하고 1백% 가동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도 일반 의원급이나 병원의 입원실 가동률은 겨우 50∼60%. 40%에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의료보험이 의료수요를 창출하고 있으나 균형을 잃는 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문제점>
왜 환자들은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으로만 몰리는 것일까.
서울대학교병원 제1진료부원장 김영균 박사는 이러한 종합병원집중화현상에 더해 『한마디로 시설과 의료진의 문제 때문』이라고 말한다. 『진료기관이 따로 지정되어있지 않으니 의료보험환자가 약간의 돈을 더 내더라도 종합병원을 찾겠다는 심리와, 큰 병원일수록 이름이 잘 알려진 의사가 많고, 검사시설이 완벽하게 잘 갖추어져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서울대학교병원을 찾는 환자 가운데 30%가량은 거주지 주위의 l,2차 진료기관에서도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소위 종합병원에 안 와도 좋을 환자들이라고 한다. 물론 대학병원은 교육병원의 기능을 갖고있어 경미한 환자가 전혀 오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만 30%의 비율은 너무 높다는 지적이다.
연세의료원 부원장 김병길 박사의 진단도 이와 비슷하다. 의료보험이 실시된 후 이같은 종합병원으로의 환자 집중화경향이 부쩍 높아졌다면서 병원문턱이 그만큼 낮아졌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또 서울시 의사회장 김도영 박사도 의료전달체제가 확립되어있지 못한데다 환자들의 의식구조가 잘못되어 있는데 그 원인을 찾고있다.
김 회장은 정부의 의료시책 가운데 『의료체계에 역행하는 시책도 많다』면서 『국공립병원의 공사화가 이러한 환자의 종합병원 선호도를 부채질했다』고 말하고있다.
또한 큰 병원일수록 이름이 알려진 의사와 최신 의료시설이 많고 검사결과에 신뢰를 가질 수 있으며, 전문과별 연계성이 좋아 여러 가지로 편리한 반면 개업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신뢰성이 낮고 시설이나 진료비 책정에 대한 불안감 등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어느 개업의의 이야기다.
가벼운 감기나 급성바이러스성 위장염·급성충수염·정상분만 등은 의원급에서도 충분히 진료와 처치가 가능한 것인데도 종합병원에 이런 환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
어느 변두리 병원의 원장은 『우리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권고한 환자를 보면 일반 환자들은 두말없이 수술대위에 올라가나 의료보험 환자들은 집에 가서 상의한 후 다시 오겠다 해놓고서는 그 후엔 나타나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고 전한다.
나중에 알고 보면 종합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대책>
이러한 종합병원 집중화현상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서 김병길 박사는 종합병원의 외래환자에게는 보험혜택에 차등을 두고 경미한 환자는 거주지역에서 진료를 받도록 환자에 대한 계몽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처방한다.
김도영 박사도 종합병원에선 1, 2차 의료기관에서 의뢰하는 환자들만 치료하게 하는 등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허정 교수는 『외국처럼 가정의 내지는 단골의사제도를 정착시켜 건강상담은 이 테두리 안에서 1차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의식구조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또한 『종합병원의 외래환자 중 60%나 차지하는 의료보험환자만이라도 개인의원을 거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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