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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불화"도 "만취"도 이유가 될 수는 없다|경찰관의 궁류난동을 통곡한다…송원휘<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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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26일 밤사이, 이 땅의 경남 한 촌락에서는 경악스러운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을 누군들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너무나도 엄청난 뜻밖의 사건이었다. 『세상에 이런 엄청난 사건이 있을 수가…』하는 첫마디외에는 다음 말이 이어서 나올 수가 없었다. 더우기 범행자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국민의 공복인 경찰관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아연하게 하였다.
「가정 불화」라든가 「만취가 되어서」라는 것으로 그 원인을 규명하기에는 사건 자체가 흔히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정신 질환」이라든가 「순간적인 정신 착란」이라고 하는 것도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크고 작고간에 가정불화가 없을 수 없으며, 무엇에 대해서든지 욕구불만이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홧김에 일을 저지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또 술에 만취 상태였다고 하나, 그 정도의 술도 마시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더구나 새벽 5시께에는 6시간이라는 긴 밤을 지내면서 이미 술이 깨어있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어느 집에 들어가 잠자고 있는 일가족을 모두 깨우고 수류탄을 터뜨려 자신도 함께 자폭을 하였다. 이것은 끝까지 잔인한 마지막이었다. 자신의 행동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마도 정신 질환이나 순간적 정신 착란이었다면 그런 식으로 자폭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범인 우범곤순경은 평상시 주벽이 있었다고도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 사회의 안전을 보호하는 책임을 가지고 무기를 휴대할 수 있는 특수권한을 부여받은 경찰이다. 그런데 그런 인물에게 주벽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동료와 상관들이 간과해온 것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어찌 이번이 처음 일인가
이번의 천인공로할 사건은 단순히 한 경관의 우발적인 만행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엔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살인사건은 현장에서 경찰관 자신이 도둑질을 하여 놀라게 한 것 등 비록 크고 작고간에 빈번히 경찰이 국민에게 보여주는 불미스러운 사건중의 하나였다. 뇌물을 받고 국민이 애써 신고한 범인을 놓아준다거나 권력을 남용하는 등 오히려 국민에게는 불신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임무에 어긋난 행동, 즉 책임의식의 결여와 비인격적인 사고방식에서 연유된 것이다. 경찰관은 공인의 직분이므로 어느 수준에 이르는 기본적 윤리관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동시에 그들에게도 계속적인 전인교육을 실시해 시대에 따른 올바른 의식구조를 세워주어야 한다.
이번 사건은 경찰관뿐 아니라 국민의 녹을 먹는 모든 공무원에게,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까지 된 이 사회 전반에 문제가 있다고 보여진다.
자신의 공적인 위치와 맡겨진 특권을 남용·오용하는 횡포는 바로 잘못된 의식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끔찍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대부분의 범행 동기가 - 살기 싫은 세상, 너 죽고 나 죽자 - 는 식의 막가는 사고가 문제라는 점이다.
사회심리학의 이론에 따르면 이런 심리는 대부분 급진적으로 발전하는 산업사회나 관료제 사회, 또는 도시 사회에서 낙오되었을 때 느껴지는 갈등이 원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하형사의 경우만 해도 봉급이 적다는 것 외에는 더 이상의 동정을 받을 여지가 없지 않았던가. 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상시 의식구조가 어떠했느냐는 것이다.
아내와의 불화가 이번과 같은 비정상적이고 폭력적인 사태로까지 진전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생명의 존엄성같은 것이 희박해진 때문이 아닐까.
생명의 존엄성을 되찾자
그렇지 않아도 요즘은 국민 전체에 대한 의식개혁운동이 한창이다. 그러나 과연 참된 의식의 개혁이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문제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진정 우리가 바꿔야 할 의식구조는 외래품을 전혀 안 쓴다든지, 선물을 주고받지 않는다든지, 또는 가정의례준칙을 열심히 지킨다든지 하는 것에 앞서야한다.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바른 자세를 갖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사람의 됨됨이 결코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초등교육에서부터 꾸준히 정서교육 등을 게을리 말아야한다. 책으로만 배우는 국민윤리는 오히려 현실적인 면에서 거부감만을 불러일으키기 알맞다. 실제로 사회에 나와 어떤 일에 종사할 때에도 꾸준히 지속, 병행되어야 하며, 조식으로 접하는 매스컴도 그 선도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심한 것은 TV 등의 프로그램에서 태연하고 공공연하게 폭언이나 폭력(그것이 실사 코미디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하더라도)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제는 한 개인에게서는 이유를 찾고 책임을 떠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처에 난무하는 폭력과 인명 경시의 풍토가 개선되어야 하며 그들을 길러낸 우리 사회 전반이 다시금 자성을 해야만 하겠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정서 교육은 밥을 먹고살아야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다. 감성도 이성도 똑같이 변형 발전해 가도록 매스컴을 통해, 또 각자의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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