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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역별 비례대표 확대에 공감대 … 지역구 기득권이 장애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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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호 04면

권역별 비례대표제, 중대선거구제, 석패율제….

헌재 결정 이후 거론되는 새 선거제도들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30일 국회의원 지역구 간 인구편차 비율을 3대 1에서 2대 1로 줄이라고 한 뒤 정치권에서 이런저런 선거제도들이 거론되고 있다. 물론 현행 선거제도의 근본적인 개혁 가능성을 예단하긴 어렵다. 지역구를 떼거나 붙이면서 의원들끼리 소모적인 진흙탕 싸움이 전개될 수도 있다. 그럼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제도의 장단점은 무엇일까.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영호남 등 권역별로 비례대표 명단을 미리 만든 뒤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한다. 전국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현 제도와 달리 여야 열세 지역에서도 당선자가 나올 수 있다. 특히 ‘독일식’은 16개 권역별로 정당 득표에 따라 의석을 나누는데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비율이 1:1이다. 예를 들어 선거구가 100석인 권역에서 A당 지지율이 30%, B당이 10%라면 A당은 30석, B당은 10석을 받는다. A당 지역구 당선자가 20명이면 이들은 당선이 확정되며 나머지 10명은 비례대표 후보 순서로 당선된다. B당 지역구 당선자가 한 명도 없다면 10명 모두 비례대표 후보 순서로 당선된다. 이 경우 의원 총수가 많아진다는 게 단점이다. 그러나 특정 정당이 과반을 획득하기 어려워 연합정치가 활발해진다.

▶중대선거구제=선거구를 넓혀 한 곳에서 2~4명을 뽑는 방식이다. 1위 득표자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와 달리 사표(死票)를 줄일 수 있다. 소수 정당이 의석을 확보할 길이 열린다. 제3정당론이 힘을 받을 수도 있다. 동시에 거대 정당이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의석을 얻을 가능성도 커진다. 선거구가 넓어지는 만큼 선거 비용도 많이 든다. 한 지역구에 여러 명을 공천할 수 있어 계파 간 나눠먹기가 심해진다.

▶석패율제=석패율은 낙선자가 당선자와 비교해 득표한 비율로, 높을수록 아깝게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 비례대표 명단 중 특정 번호에 지역구 후보 3~4명을 등재하고, 지역구에서 당선된 사람은 제외한 뒤 남은 사람 중에서 석패율이 가장 높은 사람을 비례대표로 당선시킨다. 일본에서 1996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지역주의를 약화시키고 정당 내 공천 갈등을 완화시킨다. 하지만 유력 정치인이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동시 출마해 쉽게 당선된다는 게 단점이다.

이들 제도는 모두 다당제와 연관이 크다. 어느 정당도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파 정당이 소수 진보정당과 손잡는 경우도 생긴다. 이 때문에 진보정당과 야권에서 선호한다.

실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과거엔 도입에 실패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99년 내각제를 추진하던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회의·자민련이 도입에 합의했지만 지역구 상실을 우려한 의원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도 민교협·전국교수노조·학술단체협의회 소속 교수들이 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했지만 공론화되지 못했다. 손학규·정동영 등 과거 대선 주자들도 주장했지만 동력을 얻지 못했다.

이번엔 헌재 결정으로 자연스럽게 논쟁의 판이 벌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한다. 새정치연합 원혜영 정치혁신실천위원장은 “농촌은 소선구제, 선거구가 세 곳 이상인 도시는 중대선거구제로 하자”고 한다.

정치학자들은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 가능성을 높게 본다. 김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대통령제이면서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한 나라는 없다. 제도 궁합이 안 맞는다”고 말했다. 농촌과 도시의 선거구제를 달리하는 방안(원혜영)은 의원끼리 다른 선출 방식을 거친다는 면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 김 교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해볼 만하다. 다만 독일식과 달리 의원 수를 300명 내에서 조절하되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리는 방향으로 논의하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지역구 수를 줄일 수 있느냐가 문제다. 새정치연합 김춘진(고창-부안) 의원은 “비례대표는 최근 사회적 물의를 많이 일으키지 않았나”고 되물으며 “농·어촌 지역 대표성을 배려하기 위해선 비례대표를 줄이고 지역구 의원을 늘려야 한다”고 정반대의 주장을 한다. 지역구 의원들의 기득권 집착이 제도 도입에 큰 장애물인 셈이다.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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