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 읽기] 2015년 예산안과 국정기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99호 18면

2014년 국정감사가 총총히 끝나고 이제 세간의 주목은 2015년 예산안으로 쏠리고 있다. 언론은 세입·세출 규모나 재정적자 크기에만 관심을 둘 뿐 박근혜 정부의 국정 기조나 국정 과제와 2015년 예산 사이의 연관성에는 별 관심이 없다. 정부도 5년 동안의 국정 기조와 국정 목표를 추진함에 있어 이 예산이 어떤 의미와 유기적인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 없이 신속히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시켜 주기만 바랄 뿐이다.

매년의 예산은 반드시 정부의 ‘국정 기조’와 ‘국정 목표’의 유기적인 연계 속에 수립되고 이해되며 평가돼야 한다. 왜냐하면 취임 초기 설정한 국정 기조는 바로 국민의 복리와 직결되는 중대하고도 시급한 국정 과제를 담고 있어 매년 예산을 통해 그것이 제대로 성취돼야만 궁극적으로 국민이 승리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5월 ‘4대 국정 기조’와 ‘14대 국정 추진 전략’(전략보다는 국정 목표에 더 가깝다)을 확정했다. 4대 국정 기조란 대통령 취임사에서 언급되기도 했듯이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 기반 구축이다. 그 하나하나 아래에는 여러 개의 ‘국정 추진 전략’이 설정돼 있다. 예컨대 경제부흥의 경우에는 창조경제, 경제민주화, 민생경제의 세 가지 국정 추진 전략이 들어 있다. 국민행복 아래에는 맞춤형 고용복지, 창의교육, 사회통합, 그리고 국민 안전이 담겨 있다. 문화융성과 평화통일 기반 구축이라는 국정 기조 아래에도 각각 세 개의 국정 추진 전략이 수립돼 있다.

14개 국정 추진 전략은 어느 하나도 박근혜 정부가 놓칠 수 없는 엄중한 국정 목표나 마찬가지다. 이것을 포기하는 것은 취임 초기의 정신을 포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과도 같다.

그런데 경제부흥 아래에 있는 세 개의 국정 추진 전략 중에서 경제민주화는 2015년 예산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그리고 창조경제와 민생경제는 2015년 예산안의 ‘경제살리기’ 안에 들어 있다. 판교밸리 조성, 창업벤처 선순환 생태계 조성, 핵심 성장동력의 R&D 확대, 유망 서비스산업 육성사업 등이 그렇다.

하지만 ‘국정 추진 전략-창조경제’ 안에 있는 총 22개의 구체적인 ‘창조경제-국정과제’를 실행에 옮기는 노력은 미흡하다. ‘국정 추진 전략-민생경제’ 안에 있는 ‘서민 생활 안정’과 ‘안정적 경제 운영’이라는 두 국정 과제는 2015년 예산에서는 ‘희망 나누기’ 아래로 들어가 있지만 ‘국정 과제 #42 건전재정 기조 정착’은 기대하기가 어렵게 됐다.

두 번째 국정 기조인 국민행복 안에는 맞춤형 고용복지, 창의교육, 사회통합, 국민 안전이 들어 있는데 2015년 예산안에서는 창의교육과 사회통합이 빠져 있다. 그리고 국민안전은 ‘평화통일 기반 구축’의 핵심 내용인 방위능력 제고와 함께 ‘안전만들기’ 안으로 편입됐다. 문화융성이라는 국정 기조는 2015년 예산에는 ‘문화체험 기회 확대’라는 작은 항목에만 들어 있다.

복잡한 것 같지만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로 박근혜 정부의 4대 국정 기조는 2015년 예산에서는 ‘경제살리기’ ‘희망나누기’ ‘안전만들기’로 재편성됐다. 둘째로 그러는 과정에서 경제부흥 안에 있던 경제민주화는 제 위치를 잃고 말았고, 민생경제는 ‘희망나누기’로 분리돼 나갔다. 셋째로 국민행복 안에 있던 창의교육과 사회통합은 예산안에 거의 반영되지 못했다. 끝으로 국민행복 안에 있던 국민안전은 평화통일 기반 구축과 함께 ‘안전만들기’로 탈바꿈했다.

이 예산안을 보면서 몇 가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 2015년 예산에는 국정 기조의 중추가 되는 국정 목표(즉 국정 추진 전략)들이 소홀한 취급을 받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경제민주화, 창의교육, 사회통합, 문화예술진흥, 문화산업융합과 같은 국정 목표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물론 경제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니 잠시 뒤로 물릴 수는 있다. 그러나 출범한 지 2년도 안 돼 이런 중요한 국정 목표들을 도외시해 버린다면 성공한 정부가 되기 힘들다.

둘째로 ‘경제살리기’ ‘희망나누기’ ‘안전만들기’와 같은 부르기 편한 말들이 당초 설정된 국정 기조의 개념을 혼란시키게 하면 안 된다. 특히 ‘국민안전’을 ‘평화통일 기반 구축’ ‘튼튼한 안보 구축’과 묶어 ‘안전만들기’로 명명한 것은 문제다. 평화통일 기반 구축이라는 국정 기조가 마치 ‘안전만들기’의 하위 개념이라는 인상을 주기 쉽기 때문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