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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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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균전은 일반적으로 다음 3가지 방법으로 실행된다. 첫째는 모략이다. 적진 깊숙이 잠입한 결사대가 하천이나 댐·저수지 등에 세균을 살포, 오염시키는 것이다.
둘째 방법은 포탄이다. 포탄 속에 세균으로 오염된 작은 동물이나 물체·음식 등을 쑤셔 넣어 적진 내에서 폭발시킨다.
제3의 방법은 항공기를 이용한 공중살포다.
「이시이」 중장은 3번째 방법을 구상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폭탄 속에 페스트균에 오염된 쥐벼룩을 잔뜩 넣어 적진에 투하시킨다는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투하되기도 전에 적의 고사포로 격추된다면 이 폭탄은 아군의 상공에서 폭발할 수밖에 없다. 이를 피하기 위해 고도를 너무 높이면 공기가 희박해져 쥐벼룩이 죽어버리고 만다.
그렇지 않으면 폭탄이 폭발할 때 화약의 온도가 높아 쥐벼룩이 죽을 수도 있다. 「이시이」는 가장 효과적이고 또 정확한 방법을 고심한 끝에 「도자기폭탄」이란 것을 고안해 냈다.』전대원의 증원이다.
금속이 ,아닌 도자기로 만든 폭탄은 소량의 화약으로 그것도 고도가 별로 높지 않은 곳에서도 폭발한다. 그 속엔 페스트균에 오염된 쥐벼룩을 잔뜩 넣어둔다면 지상에 살포된 쥐벼룩은 즉각 사람의 피를 향해 행동을 개시한다는 가공스러운 착상이었다.
1939년부터 45년 여름까지 페스트쥐벼룩과 도자기폭탄을 이용한 실험이 수없이 행해졌다. 실험장소는 현재의 대경유전이 있는 안달이 주된 무대였다.
실험현장엘 가보자. 실험장 한쪽 구석에 10m또는 5m간격으로 마루따를 꽁꽁 묶은 기둥이 세워져 있다. 마루따는 이불과 덮개로 몸 전체가 보호되어 있다.
가장 먼저 실험해봐야 할 것은 폭탄이 어느 정도의 고도에서 어떤 각도로 투하될 때 가장 효과가 크냐는 테스트다. 폭발지점과 세균오염범위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상세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폭탄이나 포탄의 파편을 맞아 마루따가 죽는다면 실험효과가 없다. 어디까지나 세균오염에 의한 사망률만이 냉철히 추구되지 앓으면 안된다. 마루따들이 이불과 덮개를 온몸에 두르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어떤 때는 마루따의 엉덩이만 노출시켜 가스회저(회저=인체 일부분의 조직이 생활력을 잃어 죽은 상태로 되는 증세) 균의 강제감염실험도 했다.
가스괴저는 전쟁터에서 창상이나 폭열상을 입은 명사가 걸리는 가공스러운 병이다. 상처를 불결한 상태에서 그대로 내버려두면 흙 속에 있는 가스회저균이 침입, 6∼8시간만에 발병한다.
열과 함께 균의 독소가 온몸에 퍼져 모든 근육이 죽는다. 당시는 이병에 걸릴 경우 사지를 절단하는 방법 외엔 아무런 처방전이 없었다.
노출된 마루따의 엉덩이를 향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가스회저균에 오염된 유산폭탄이 폭발한다. 수많은 파편이 마루타의 엉덩이에 꽂힌다.
마루따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있는 가운데 대원들은 가스회저균이 마루따에 명중되었는지의 여부를 확인한다. 그 뒤 이들 마루타들은 특실감옥에 수용된다. 발병에서 사망 때까지의 과정이 철저히 기록된다. 물론 간호 따윈 생각조차 할 수 없다. 731부대가 원하고 있는 것은 가스회저균이 마루타의 엉덩이근육을 왕성하게 파먹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1주일 후 마루따는 썩은 육체에서 몸서리 쳐 치는 악취를 풍기면서 전원이 죽어갔다.
『가스괴저 실험은 수없이 계속 됐다. 이것뿐만 아니었다. 만년필 형태의 세균 피스톨 실험 등 극히 원시적인 실험도 했다. 수류탄을 마루따의 볼기짝 부근에서 폭발시켜 그 파편이 근육 속을 파고 들어가는 과정도 조사했다. 각재로 마루따를 마구 패고선 근육좌상의 과정도 면밀히 살폈다.』
전대원들이 말하는 「실험」을 듣고 있노라면 글을 쓰는 내 손마저 오그라 붙기까지 했다.
731부대는 세균전을 실험에 그치지 않고 실행에까지 옮겼다.
1949년 12월26일 열린 하바로프스크 군속군사재판에서 「니시」(서) 군의는 『1940년 중국중앙부령파시부근에서 세균이 사용된 기록영화를 보았다』고 증언했다.
또 731부대는 도자기폭탄완성을 앞두고 풍선폭탄을 먼저 사용했다고 미국인저널리스 트 「존· 바웰」씨는 말한다.
태평양상공에 세균폭탄을 실은 거대한 수소풍선을 띄워 미 본토에 투하시킨다는 기상천외의 계획이었다. 이 풍선은 튼튼한 창호지(화지)대신 곤냐꾸(구약나물)를 사용했는데 이 때문에 2차 대전 말기에는 일본에 곤야꾸 품귀소동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풍선폭탄은 1944년부터 45년에 걸쳐 약9천개가 띄워졌고 미 정부는 이를 「번개」(도처)라고 불렀다.
풍선폭탄의 대부분은 태평양상공에서 폭파했지만 미 본토에 떨어진 것도 결코 적지 않았다.
당시 미국각지에서는 원인 모를 산불이 일어났다고 했고 워싱턴 DC에 있는 유명한 스미소니언박물관에는 미군이 「대번개작전」으로 포획한 풍선폭탄의 현물이 지금도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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