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학점에 기쁨 · B학점에 안도…F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중앙일보

입력

윤동주 시인의 '별헤는 밤'을 패러디해 대학생들의 성적 스트레스를 사실적으로 노래한 시(詩)가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다.

지난 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홈페이지(http://econ.korea.ac.kr)에 처음 등장했던 이 패러디시는 2일 한 네티즌에 의해 이 대학 자유 게시판으로 옮겨지면서 1100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패러디시는 "계절학기를 수강하는 여름에는 재수강으로 가득차있다"며 방학임에도 계절학기를 듣는 학생들로 붐비는 현실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성적표에 하나 둘 새겨지는 학점을 이제 다 못헤는 것은 학점수가 너무도 다양한 까닭"이라며 'A'학점만으로 성적표를 채우지 못한 대다수의 학생을 대변한다.

패러디시의 백미(白眉)는 학점에 대한 평가.

시는 별을 헤며 추억.사랑.동경 등을 떠올렸던 윤동주 시인과는 달리,

A학점에는 기쁨.B학점에는 안도.C에는 씁쓸함.D는 괴로움 그리고 F는 어머니, 어머니!라는 이름을 붙였다.

대학생활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도 이 패러디시의 특징이다.

시가 "학점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본다"며 제시한 전공 수업때 대출을 해준 아이들이나 카트라이더.미니홈피.스타크래프트 등의 '이국단어' 그리고 폐인이 된 고시원 친구들의 이름 등은 요즘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다.

패러디시는 다시 "A학점이 아스라이 멀듯이 이네들의 현실은 너무나 멀리 있다"며 "딴은 밤을 새워 마시는 넘들은 부끄러운 학점을 슬퍼하는 까닭"이라고 성적때문에 고통받는 현실을 적었다.

시는 그러나 결론부에 이르면 "계절이 지나고 나의 학점에도 족보가 먹히면, 옥상정원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적힌 성적표에도 자랑처럼 A+이 무성할 게외다 "라며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보이기도 했다.

패러디시를 읽은 네티즌들은 "패러디시가 학점을 둘러싼 학생들의 고민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며 긍정적인 반응이다.

아이디 후훗은 "누가 쓴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적공시를 즈음해서 우울한 학우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글"이라며 "누가 쓴 글이지는 몰라도 이 글을 쓰신 분은 문단에 한 번 진출해보는게 좋겠다"고 호평했다.

kkangzy도 "누군지 몰라도 만나보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수기 기자

다음은 패러디시(詩)전문.

계절학기를 수강하는 여름에는

재수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성적표 뒤 학점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성적표에 하나 둘 새겨지는 학점을

이제 다 못헤는 것은

학점수가 너무도 다양한 까닭이요,

계산이 귀찮기 때문이요,

헤아려봐야 밑의 평균과 다를 이유가 없는 까닭입니다.

A 하나에 기쁨과

B 하나에 안도와

C 하나에 씁쓸함과

D 하나에 괴로움과

F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학점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전공 수업때 대출을 해줬던 아이들의 이름과

카트라이더, 미니홈피, 스타크래프트

이런 이국단어들의 이름과, 폐인이 된 고시원 넘들의 이름과,

가난한 동기, 선배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현실과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A학점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궁금해

이 복잡한 학점이 내린 성적표 위에

내 이름자를 쓱 보고,

얼른 봉투 속으로 집어넣어버렸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마시는 넘들은

부끄러운 학점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계절이 지나고 나의 학점에도 족보가 먹히면

옥상정원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적힌 성적표에도

자랑처럼 A+이 무성할 게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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